[읽기 쉬운 요한계시록강해]#42. 20:7-15. "곡과 마곡"
오늘 본문은 사탄의 최후와 최후 심판에 대한 내용입니다. 에스겔서에는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과 회복 행동 이후 또 한 번의 도전, 곧 이미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는 악한 세력의 최후 발악을 하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은 요한 시대 이후 상당 기간 계속해서 묵상과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예스겔 38장에 나옵니다. 그 내용은 신적인 선한 목자의 사역, 이스라엘의 마음이 죄로부터 정결해지는 것, 그리고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된 포로 귀환을 예고하는 본문(34-37장) 직후에 나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 뒤에 에스겔 38장은 북쪽 끝에 있는 나라 마곡과 그 왕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요한이 이 전승을 붙들 시점에, 그는 ”곡과 마곡“을 ‘땅의 네 모퉁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두 나라로 다루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핵심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구출된 이후에도 마곡이 최후의 헛된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에스겔서에 내포된 이야기를 감안할 때, 우리는 요한의 책에서 이 마지막 이야기가 17-19장의 바벨론 종말과 20:4-6의 ”첫 번째 부활“ 뒤에 나와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7~10절은 천년 후에 사탄이 풀려나 잠시 동안 반항하고 격전을 벌이다가 영원한 불로 들어가는 내용입니다.
20:7-8,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앞서 3절에서 언급했던 대로 사탄은 밑 없는 깊은 구덩이(무저갱)에 천년 동안 갇혔다가 잠시 풀려나게 된다고 요한은 말합니다. 사탄이 무저갱에서 풀려 나오자 곡과 마곡이라 불리는 나라들을 꾀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싸움을 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 나온 아마겟돈 전쟁(16:16, 19:19-21)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겟돈은 천년 이전에 짐승과 땅의 왕들이 나와 땅의 왕들을 소집했지만 곡과 마곡의 전쟁은 천년 이후에 사탄이 직접 지휘하고 바다의 모래와 같이(창 22:17)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석방이 우리에게 달갑지 않은 뜻밖의 일이지만, 이것은 세상에서 모든 악이 온갖 자취까지 근절되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는 위대한 변혁이 반드시 일어나게 하려는 하나님의 신비한 계획의 일부인 것 같습니다.
20:9-10,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루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사탄, 즉 고발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전부 해야 하고, 그 뒤 사탄도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일을 수행하고, 그 때문에 그 뒤에 처벌받는다는 생각은 우리가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 말의 핵심은 악이 일정한 통제 아래 최악의 일을 저지르도록 허용되어 결국 패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흥미로운 것은 사탄이 열방을 전투로 소환하는데도 전투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흰말을 탄 기수가 입의 칼을 사용해 승리를 거두는 19장의 대전투가 사실상 마지막 전투란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엘리야와 비슷한 전술로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을 불사른다는 것입니다. 그 뒤에 마귀는 괴물과 거짓 선지자와 함께 유황 못에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17장에서 타도되었고, 두 괴물은 19장에서 종말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용도 영원히 타도되었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20:11-12,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퍼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요한은 본문에서 왜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사라졌다고 말하는가? 아마도 그 이유는 땅이 그 속에서 자행된 악으로 인해 타락했고, 하늘 역시 사탄이 최초의 반역을 지휘했던 곳이 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본문의 핵심은 창조주 하나님이 마침내 최후의 심판을 위해 자리에 앉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에서처럼, 역시 이 심판은 각 사람이 살아온 총체적 삶과 일치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의 평결은 오직 믿음의 토대 위에서 현재 내려진 평결과 일치하는 방법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일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그리스도인 개인 안에 전반적으로 ”영광과 존귀와 불멸을 착실하게 추구“(롬 2:7)하는 인생 행로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책“이라는 것입니다.
20:13-15,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본문에서 말하는 ”바다“와 ”사망과 음부“는 다시 부활할 때는 무덤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요 5:28)에게 비록 무덤이 없고 시신을 못 찾는다고 할지라도 부활하게 된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바다에서 죽어 시신이 없어 무덤을 만들지 못한 사람들은 부활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부활하여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왕상 13:21-22). ”사망“은 육지에서 질병이나 전쟁, 기근, 역병등으로 죽은 자들은 자칫 무덤에 매장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들도 역시 부활하여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음부“는 모든 죽은 자가 집합되는 지하의 주거지로(창 37:35, 욥 17:13), 때로는 중간 상태에 있는 영혼들이나 의롭지 못한 자가 가는 곳으로 언급되기도 합니다(눅 16:23). 음부 또한 예외 없이 모든 죽은 자들을 심판하도록 내어준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진다는 것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불 못에 던져지며 따라서 인간의 마지막 원수인 사망과 음부까지도 완전히 없어져 버린다는 뜻입니다(사 25:8, 고전 15:26). 이것이 둘째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생명책에 기록될 만큼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