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요한계시록강해]#43. 21:1-5. "새 하늘과 새 땅"
오늘 본문은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 대한 희망찬 비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결정적 새 탄생, 거룩한 도상은 ”신랑을 위해 차려입은 신부“와 같습니다. 결혼식은 ”죽음이나 애통이나 눈물이나 고통은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이미지는 미지의 미래를 지시하는 표지판입니다. 세 하늘과 새 땅은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울 것입니다. 새로움 자체가 새롭게 되어, 하나님은 진행 중인 인간의 삶 안에서의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만물의 갱신을 계획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한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만물은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되듯이,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도성 전체가 곧 새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특히 새 백성은 곧 깨어나서 자신이 죽음과 눈물, 고통의 경계 너머에 있음을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즉 처음 것이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하늘’은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완벽한 세계고, ‘땅’은 우리가 기뻐하며 영원히 떠나야 할 형편없는 2급 임시 거처가 아니란 것입니다. 계시록 곳곳에서 보았듯이, ‘땅’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창조 세계의 영광스러운 한 부분이고, ‘하늘’은 물론 하나님의 거처지만, 또한 ‘바다’가 악한 권력의 상징으로 존재하기에, 어느 시점에 ‘하늘의 전쟁’이 거기서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2차원 세계의 두 요소 모두에게 갱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성취되었을 때 우리에게는 새 하늘만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늘과 땅은 완전히 또 영원히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더 이상 ‘바다’가 없다고 말합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말하듯이 바다는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하는 어두운 혼돈 세력입니다. 바다는 첫 번째 괴물이 등장했던 자연의 원소입니다. 하지만 새 창조 세계에는 더 이상 괴물이 다시 등장할 수도 있는 곳, 즉 바다와 같은 혼돈이 없다는 것입니다.
21:2-3,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은 본문의 핵심입니다. 요한이 사용하는 단어는 예루살렘 성전 안에 ‘거하시며’ 자기 백성 한가운데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하나님 개념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것은 요한 복음이 예수님에 대해 하는 말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셨고 ‘거하셨고’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고, ‘성막’을 세우셨고‘,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멋모르는 세상과 반기지 않는 백성들에게 오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하셨던 그 일을 이제 하나님은 우주적 범위에서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로 오셔서 치유와 위로, 기쁨의 임재로 영원히 사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관한 우리의 사고에서 오랫동안 핵심 주제였던 ’성육신‘ 개념이 하나님의 미래 세상에 관한 우리의 사고에서 핵심 주제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예수님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언젠가 완전히 또 영원히 연결될 것입니다. 바울도 에베소서 1:10에서 똑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즉 어린양의 신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성되고, 분명 그들은 이미 땅 위에 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하늘에도 있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에 대한 단서는 바울이 골로새서 3:3에서 말하는 데로, ’우리의 생명이 메시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 ‘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메시아에게 속할 때, 그들은 계속 생명을 갖고 땅 위에서 살지만, 동시에 그들은 비밀스러운 생명도 소유한다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하나님의 선물은 마지막 날에 ’나타날‘ 감취진 실재의 일부가 된다는 것입니다(골 3:4, 요일 3:2). 본서 5장과 7장, 19장의 위대한 장면에서, 헤아릴 수 없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서서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찬양을 외치는 이유가 그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하늘의 실재가 나타날 것입니다. 마치 신데렐라처럼, 이제 노예 소녀에서 신부로 변한 어린양의 참 파트너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21:4-5,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하늘과 땅의 변혁은 아직까지 성취되지 못한 모든 창조 계획, 또 보다 구체적으로 인간의 죄가 낳은 끔찍하고 역겹고 비극적인 모든 결과를 하나님이 하늘과 땅 모두에서 페기 하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새 세상은 아름다움과 힘, 기쁨, 부드러움과 영광으로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 이상 바다“가 없다는 의미가 그것입니다. 물론 이 그림의 중심은 아직 새 세상 자체가 아니고 첫 번째 창조 세계를 만드셨고 그것을 구속하고 새롭게 하기 위해 어린양을 보내실 만큼 사랑하신 한 분이신 참 하나님입니다. 여태까지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은 흐릿하게만 언급되었습니다. 그분은 거기에 계셨고 경배받으셨지만, 모든 이야기는 예수님 혹은 천사 혹은 ”하늘의 음성“에 의해서만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마침내 1:8의 진술 이후 처음으로 하나님이 친히 요한에게 말씀하시고, 그를 통해 요한의 교회와 오늘의 교회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직접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신다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묵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