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

[읽기 쉬운 요한복음강해]#13. 4:27-42. "씨 뿌리는 사람 추수하는 사람"

이헌교 2023. 2. 21. 16:04

 

오늘 말씀은 구원의 대상의 경계선 밖에 있는 사마리아여인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에 대하여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을 제자들에게 나누는 내용입니다.

 4:27, “이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하는 것을 보고 놀란 것은 당시 랍비가 여자들과 공적으로 대화하거나 가르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제자들 또한 예수님이 여타 랍비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 아닐까?

 4:28-29,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여자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일부러 정오 무렵에 우물가에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물동이를 두고 마을로 들어가서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여자는 예수님을 점쟁이와 메시아의 중간쯤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의 대화는 여자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가서 예수님을 전할 에너지를 준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이 대화와 그 여자의 반응은 한 가지 사실을 입증해 주었던 것입니다. 곧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선택받은 백성의 울타리 밖에,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영적으로 굶주린 한 사람이 자신의 말씀을 기꺼이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기쁜 마음이 제자들이 주는 음식을 먹지 않을 정도였던 것입니다. 이에 제자들은 누가 예수님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31-33절).

 4:34-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예수님의 양식은 두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힘의 원천일 것입니다. 바로 성령의 능력인 것입니다. 파종과 수확은 늘 시간적 간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시간적 간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자마자 거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마을로 가서 예수님에 대하여 전했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파종한 들판 사이로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다가오는 모습을 이때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복음을 전하여 본 사람들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일 때 너무나 기쁜 마음이 들어 음식을 먹지 않고서도 배부른 생각이 들었다는 것에 공감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4:36-38,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아마도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씨 뿌리는 사람으로, 자신과 제자들을 추수하는 사람들로 생각하신 것입니다. 아니면 요한만이 아니라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자와 의로운 이스라엘 백성의 전체를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째든 핵심은 성취의 때, 추수의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혼돈과 소외로 고통받는 한 여성과 나눈 한낮의 특별한 대화가 이 점을 깨닫게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4:40-42,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구원의 경계선 밖에 있는 사마리아인들도 세상을 구할 구주를 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저 멀리 로마에서 황제가 자기 자신에 붙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그 호칭을 예수님에게 붙였던 것입니다. 바로 ‘세상의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여인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회 부적응자로 완전히 부도덕한 삶에 빠져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여자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면서 자신을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이 없는 대낮에 우물에 가기로 결심하는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여자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첫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일을 하기도 전에, 여자는 마을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우리들이 기다리고 고대하던 메시아라고 전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확신을 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유대인에게서’나온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지만(4:22), 이 말의 핵심은 구원이 유대교 울타리 밖으로 뻗어나가 온 세상을 포용한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사마리아에서 일어난 이 사건과 더불어 그 과정이 시작이 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 사마리아인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일까? 경계선 밖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아마도 아직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아닐까? 예수님 이후에도 추수하는 사람들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에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들이 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떻게 추수를 해야 하는가 입니다. 이것을 터득해야만 유능한 추수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일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 일을 온전히 이루고 있는지를 한 번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