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

[읽기 쉬운 요한복음강해]#29. 7:31-39. "생수의 강"

이헌교 2023. 3. 16. 11:58

 

오늘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생수의 강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성경은 대부분 중동지방에서 기록되었는데, 그곳은 대부분 사막이라서 어디를 가든지 물이야말로 일급 생필품이었다고 합니다. 물이 있는 곳은 번창할 수 있었지만 물이 없는 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처럼 그곳 지방에서 물은 생명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흐르는 물, 즉 생수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7:31-32,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무리들은 순례객들 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부하들을 보냈던 것입니다. 원래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계급인 사두개인들은 서로 앙숙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하스몬 왕조 때 서로 권력을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대립을 한 관계였다고 합니다. 결국 이들은 서로 권력을 잡으려고 로마를 끌어들였다가 bc 63년에 폼페이수스 장군에게 도리어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에 대해서는 서로 공동전선을 취하고 있는 이유는 이들의 기반이 민중의 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민중들이 예수님에게 지지를 하고 있으니 이들의 기반이 흔들렸던 것입니다. 즉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놓치지 싫었던 것입니다.

 7:33-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는 마지막 유월절까지는 6개월 남짓 남아있었으며, 예수님은 그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있던 곳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간다”고 하니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떠나 헬라인들을 가르치려 가는 줄 알고 있다고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35-36절)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본문의 “목마른 사람은 와서 마시라”는 외침은 이사야 55:1을 연상시키는 말씀입니다. 초막절 축하 의식 가운데는 제사장이 제단 주위에 물과 포도주를 붓는 순서가 있다고 합니다. 초막절에 늘 기원했던 내용 중에는 비를 바라는 기도와 죽은 사람들의 부활을 기원하는 기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물은 그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새로운 생명이라는 주제와 잘 맞는 주제인 것입니다.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본문은 에스겔 47장을 연상시키는 말씀입니다. 거기에는 유배 이후 성전과 예루살렘이 경이롭게 회복되리라는 예언자의 위대한 환상 중에, 새로운 강이 성전 문지방 아래에서 어떻게 흘러나올 것인지를 묘사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강은 점점 더 깊어져서, 사해까지 흘러내려 갈 것입니다. 강물은 사해에 닿으면서 사해를 소생시켜, 사람들은 거기서 고기를 잡고, 아름다운 유실수들이 그 주변에서 자랄 것입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마지막인 22:1-2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새 도시와 성전 대신, 예수님은 이 약속이 각 사람 안에서 성취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 안에 서 계시면서, 아마도 제사장이 하나님의 복에 감사하고 미래를 소망하며 엄숙하게 제단 주변에 물을 붓는 그때, 자기들 안에서 생명의 물이 솟아나 주변 세상으로 흘러가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초청의 말씀을 외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7: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한은 예수님이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가 그들 안에 거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신 이후에 주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영광을 받는다”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 말은 예수님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제부터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여러 각도에서 점점 더 많이 언급할 것입니다. 이것은 앞서 요한이 십자가 죽음을 가리켜 예수님이 ‘들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던 것과 맞아떨어지는 것입니다(3:14).

 예수님은 물리적으로 십자가 위에 ‘들리실’ 테지만, 이것은 참 영광의 순간일 것입니다. 어린양이 세상 죄를 없애시는 십자가 사역을 통해서만, 사람의 마음이 새로이 재건된 성전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성령께서 그들 안에 흘러넘칠 수 있을 만큼 깨끗하고 온전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목적인 것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이 시간 나의 배 안에는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지를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