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요한복음강해]#60. 14:12-21. "또 다른 도우시는 분"
우리들은 종종 고난을 당할 때나 감당하기 힘든 일을 당할 때 “예수님이 여기 나와 함께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모든 걸 설명해 주시고, 또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셨을 것이며,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큰 위로를 주실 것이며, 우리가 무엇을 하든 응원해 주시고, 그러므로 우리는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했을까?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복음서들을 보면 예수님 시대에 같이 있던 사람들, 즉 제자들 중에 배신을 한 사람도 있었고 또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체포당시 다들 도망을 했던 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성부에게 가시면 그들은 위로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능력을 주실 보해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 또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성령을 받고 난 후 예수님과 함께 다닐 때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한 것을 우리들은 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활동은 예수님처럼 이적과 기적이 아닌 팔레스타인을 넘어서 더 큰 세계로 향한 영향력이었던 것입니다.
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나 감당치 못할 힘든 일을 당할 때면 이 구절을 가지고 기도를 많이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 앞의 말씀에서 “그보다 더 큰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아무리 우리의 기도가 어리석고 이기적이고 해로운 것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을 붙이기만 하면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름’에는 응당 인품이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인품에 맞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기에, 그분의 삶과 사랑과 목적의식에 사로 잡힌다는 뜻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 가능성의 영역에서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그 일을 하는 데 어떤 자원이 필요한지 깨닫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간구는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고 예수님의 영광에 부합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통해 아버지의 영광에 부합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말씀을 얼마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알라딘 요술램프처럼 사용해왔는가를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14:15-17,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해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게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리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예수님은 진정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보해사”를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성령”이신 것입니다. 이 단어에는 ‘위로자’란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위로는 신비스럽고 경이로운 일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감당하지 힘든 일을 당했다면 우리가 아무것도 해 줄 순 없지만 곁에 함께 있어주기만 해도 그 사람에게 버틸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성령은 바로 우리들에게 이런 ‘위로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보해사는 ‘변호자’라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변호사는 법정에 서서 사건의 진상을 의뢰인의 관점에서 판사나 배심원에게 설명을 합니다. 변호사는 사건을 변론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이 재판관이신 하늘 법정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즉 제자들에게 박해를 당하거나 억울한 처지가 되었다고 해도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하나님에게 그들을 위해 탄원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또한 로마서 8:26-27에서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약속된 성령 덕분에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생애에 함께 했던 제자들보다 훨씬 더 유리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자신과 같은 치유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눅 9:1-6, 10:17). 하지만 대체로 그들은 상당히 당황한 채 그분을 따라갔고, 그분이 같이 계시지 않을 때는 많은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막 8:18, 28-29). 하지만 성령 덕분에 더 큰일 할 수 있다고 하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얼마나 성령이 충만할까? 그러면서 자신이 성령을 받았는지 한 번씩 확인도 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 것이 된 놀라운 약속을 제시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고 약속을 하십니다(18절).
14:19-21,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우리들이 믿음의 눈으로 똑똑히 예수님을 보면, 우리는 그분의 새로운 생명과 더불어 살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무엇보다 가장 심오하게 성경에 대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 곧 그분과 아버지가 서로 “안에” 있고, 우리가 그분 “안에”있고 그분이 우리 “안에”계신다는 것을 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끊어지지 않는 사랑의 끈으로 예수님과 아버지와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삼위의 하나님과 하나가 된 삶을 살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