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요한복음강해]#63. 15:9-17. "순종과 사랑"
지금까지 예수님께서는 주님과 제자와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말씀하셨으나 이제는 제자들 서로 간의 사랑의 관계를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려면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잘못 적용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갈 때, 즉 1차 세계대전 때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하고, 본문을 가지고 곡을 붙여 합창단이 찬송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전선으로 나가고 목숨을 국가를 위해 바쳤던 것입니다. 아마도 수많은 젊은이들은 자신이 소임을 다하고 진실하고 경건하게 믿었던 그들의 자기희생과 헌신을 하나님이 높이 사실 거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크로닌이 지은 “천국의 열쇠”라는 문학작품에서도 이 문제는 적나라하게 표현됩니다. 중국 선교를 하는 수녀님들이 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독일출신의 원장 수녀님과 프랑스와 연합군 측의 수녀님들이 서로 자신의 조국을 위해 기도하고, 서로 반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처럼 ‘우리’편과 하나님 편을 쉽게 동일시하는 것은,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의 공식 종교가 된 후로 계속된 중대한 문제였다고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서구 유럽의 현실 생활이 점점 기독교에서 멀어지는 동안, 그 지도자들은 이런 동일시, 즉 ‘우리’ 편과 하나님 편을 한층 더 심화시키고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 지도자들은 20세기 주요한 세계대전에서 양측은 승리를 기원하는 기독교 사제를 고용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했던 본문이 전쟁을 앞둔 군인들에게 사용되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을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 신학에서 출발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신학은 중요한 것입니다.
15:9-10,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본문은 사랑과 순종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랑 안에 머무는 조건을 제시하시는데, 그것은 곧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계명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12절)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사랑은 그의 계명을 순종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15:13-14,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이 본문이 1차 세계대전에서 그렇게나 많이 사용된 구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예수님이 자신이 죽음을 향해 가고 계신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10:11, 13:1). 즉 예수님은 십자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명령’을 주신 분은 사랑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몸소 행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사랑할 때, 엄마는 아이가 거기에 부응하여 엄마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통치자가 백성을 정말로 사랑할 때, 또 이것이 너그럽고 따뜻한 행동을 통해 분명해질 때, 그는 백성들이 거기에 부응하여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시기 위해 몸소 십자가로 향해 걸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 인간들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친구라 불렀던 것은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모두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를 하십니다(15절).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열매를 맺게 하러 오셨다고 합니다. 그 열매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삶 전체의 변화일 수도 있고, 혹은 당장 그 결과를 보지 못하더라도 세상을 바꾸는 어떤 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 모두를 훨씬 더 참다운 인간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의 핵심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데서 오는 겸손입니다. 즉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선택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우리는 사랑을 법률로 제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사랑하라고 명령하실 수 있습니다. 법률이 이룰 수 없는 것과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의 차이를 깨닫는 것이 인간다움의, 그리스도인다움의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 일 것입니다. 저자는 독자들이 그것을 깨닫기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사랑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을 실현하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인간 이하가 아니라 더욱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종살이가 아닌 자유와 기쁨을 주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영원한 열매를 맺게 하러 오셨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우리를 더 참다운 인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예수님이 주신 계명. “서로 사랑하라”를 잘 지키면 그곳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지금 천국에서 살고 있는지를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