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요한복음강해]#73. 18:28-32. "빌라도 앞에 서시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빌라도 앞으로 끌려가신 이야기입니다. 빌라도의 고향은 전승에 의하면 스코틀랜드라고 합니다. 즉 그는 고향을 멀리 떠나 유대 땅까지 왔던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성공한 정치인이었거나, 하급 관리를 거쳐 총독으로 승진한 군인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는 유대에서 유능하게 재임하면, 고위직 승진, 더 나은 보수 등을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합니다. 유대 사람들이 그의 온갖 거만하고 부당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고발한 뒤, 그는 결국 공직에서 쫓겨난다고 합니다. 그는 37년 경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빌라도가 최우선으로 생각한 것은 이집트에서 오는 곡물이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통과하기 때문에 그곳의 안정이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팔레스타인 땅에서 반란이 일어나 이집트의 곡물이 로마 시민들에게 공급이 되지 않는다면 빌라도의 정치적 생명은 끝이 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유월절 같은 유대 명절에는 가이사랴에 있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혹시 일어날 폭동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8:28,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원래 총독은 헤롯이 지은 가이사랴의 궁전에 있었는데, 큰 명절에는 치안 유지를 위해 로마 군대의 주둔지인 안토니아 요새나, 또는 헤롯 궁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이 날은 금요일이었습니다. 유월절은 해가 져야 시작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의식적으로 깨끗게 하기 위해서는 이방인 법정이나 누룩 넣은 빵이 있는 집(출 12:15)에는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지금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고자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키고자 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때가 유월절임을 다시 한번 독자들에게 상기시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생사를 결정하는 절대 권력을 지닌 로마 총독 앞으로 끌려가시는 동안, 성전에서는 유월절 희생 제물로 바칠 어린양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18:29-30,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빌라도 또한 유대인들의 관습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빌라도가 무슨 일로 고발하느냐고 묻자. 대제사장 일행은 “그가 행악자”라고 대충 얼버무립니다. 그 당시 로마 총독들에게는 비밀 정보망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빌라도도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진짜 군사 혁명을 부추기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유대인에게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 사형에 해당되지만(레 24:1) 로마인에게는 전혀 문제될 죄목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 일행은 예수님을 처형하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18: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들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원래 유대인들에게는 사형권이 있었지만 분봉 왕 아켈라오가 추방을 당하고 유다가 로마의 직할지로 편입된 후(20년 경) 사형권은 로마 정부가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빌라도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빌라도는 이런 말을 할까? 아마도 빌라도는 지금 자신의 권력을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이곳의 책임자이고, 유대인들을 다스리고 있음을 보여 주고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유대지도자들 특히 대제사장은 세상 권력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고자 복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가 하나님 나라와 세상 권세의 싸움인데 이들은 지금 그런 세상 권세에 순종하여 하나님 나라를 치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 나라의 대제사장이란 사람이
18: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예수님께서는 이미 여러 차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3:14, 12:33). 그럼 대제사장 일행들이 하고 있는 것은 이미 예정된 일이라고 요한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로마인들이 반역자에게 가하는 죽음을 맞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광야의 뱀처럼 ‘들릴’ 것이고(3:14), 자기가 ‘들릴’ 때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 이끌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2:32).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실현시키기 위해 가장 탁월한 고대 법률 체계와 가장 고상한 고대 종교가 세상의 중심인 예루살렘에서 그것을 실행하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실행자 중 한 명인 빌라도는 지금도 주일마다 온 세게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사도신경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일행들 또한 1차 유대 전쟁 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올라가시는 길에는 유다 같은 배신자도 필요했고 빌라도 같은 통치자도 필요했으며, 대제사장 같은 하나님의 일꾼도 필요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이들은 우리 인간들을 대표하는 인물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올라가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을 맞을 것인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