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요한이서강해]#1. 1-6절. "진리를 행하라"
본서는 요한 일서와 요한복음과 비슷한 점이 있으며 이 사실은 본서가 동일한 저자인 사도 요한에 의해 기록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한 3서와 비교해 볼 때 그 길이나 내용, 문체, 동기 등이 비슷하므로 요한 1,2,3서는 비슷한 시기에 기록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는 복음 전도자들이나 선생들이 여러 곳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성도들은 당시의 관례들을 따라 그들을 자신들의 가정으로 영접했고 그들이 떠날 때는 그들의 여행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였다고 합니다. 그들 중에는 영지주의 선생들도 있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잘 분별하여 그들의 거짓된 이단 교리에 미혹되지 말 것을 당부하는 것이 오늘 본문 내용입니다.
1~3절, “장로인 나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로 말미암음이로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본문에서 나오는 장로는 초대 교회 일부에서 나이 든 사도에게 붙인 호칭이었던 듯합니다. 장로 요한은 여기서 다소 아리송하게 “택하심을 받은 부녀”라 부르는, 또 다른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다고 말합니다. 서신 말미에서는 자신이 속한 교회를 ““택하심 받은 네 자매”라 부릅니다. 우리는 이 교회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지만, 하나는 에베소에 다른 하나는 그 가까이 있거나 멀리 떨어진 한 도시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에베소의 인구는 수만 명 혹은 그보다 훨씬 많았던 것으로 보이므로, 서로 좀 떨어진 곳에 10~20명으로 이루어진 두 개 이상의 교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요한이 왜 이런 식으로 지칭했는지는 추측밖에 할 수 없지만, 가장 그럴듯한 것은 위험한 상황이었으므로 편지의 서두와 말미를 가족 간의 평범한 편지로 보이게 할수록 그와 독자들이 더 안전했을 것입니다.
요한이 편지 서두에서 말하는 논지는 그가 이 다른 교회의 활력 징후를 곧 생명의 표지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곧 “진리를 아는 모든 자”를 말하는 데 이 짧은 서신 서두에 진리에 대한 말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진리‘는 무엇인가? 요한이 보기에 그것은 아주 단순하면서 아주 심오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진리‘’ 진리‘는 그저 ’’ 아버지 하나님의 온전한 계시이신 메시아 예수‘를 의미하므로. 다른 모든 것이 거기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것‘이 우리를 온갖 영역으로 데려다준다는 것입니다. 이미 요한은 본문에서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것, 진리를 아는 것, 우리 안에 머물고 우리와 함께 있는 진리, 진리와 사랑 안에서 우리와 함께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평화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절, “너희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요한은 다른 교회 구성원 몇몇에게서 핵심적 ’’ 생명의 표지‘를 발견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들”이란 것입니다. 요한에게 진리는, 생각과 상상의 영역에서부터 실제 삶의 모든 부분에 이르기까지 온전하고 완전한 인간 삶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이 메시아 예수 안에서 이 진리가 어떤 형태인지 드러내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진리는 온전함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함은 온 세상을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 새로운 창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메시아 안에서 구속받고 성령으로 새로워진 인간들이 온 우주 만물을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니의 계획에 부합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비진리(거짓을 말하는 것)는 사람들이 구속받지 못한 현 세상이 존재하는 전부인 것처럼, 마치 ’현 상대가 바람직한 상태‘라고 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5~6절, “부녀야,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본문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복음 안에서 드러난 그 위대한 ’진리‘는, 하나님의 강력한 구속의 사랑이 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진리를 발견한 이들 혹은 그 진리에 의해 발견된 이들은, 그 사랑이 자신들을 통해 다른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주변 세상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초기 그리스도인 저자들이 연달아 강조한, 다름 아닌 ’계명‘’ 계명‘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다른 모든 일이 해결될 때 더하면 되는 추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사랑은 건강한 유기체 속에서 순환하는 혈액처럼 계속 돌고 도는 것이며, 왕성한 호흡처럼 내쉬고 들이마시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생명과 같은 것이며 우리의 일상생활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계명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사랑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요한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사랑이란 계명을 잘 지키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