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창세기강해]#14. 3:14-19. "뱀에 대한 저주"
오늘 본문은 인간의 죄로 인해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과 그 가운데에서도 드러나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다루고 있는 내용입니다. 인간의 범죄는 즉각적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를 단절시키고 말았습니다(8-13절). 하지만 인간 범죄의 결과가 하나님과의 교제 단절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범죄는 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형벌을 초래하였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최초의 언약인 선악과 언약을 어긴 범죄자들, 곧 인간을 유혹하여 범죄하게 한 뱀과 일차 범죄자였던 하와, 그리고 선악과 언약의 당사자였던 아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 죄질에 따라 각각 형벌을 선고하는 장면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정한 공의의 실행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일단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각각 형벌을 선포하시되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나아가 장차 오실 여자의 후손에게 구원의 약속을 선포하신 사실과 대속을 통한 구원의 원리를 시사해 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9절과 13절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먼저 질문하시고 대답을 들으신 것과 달리 뱀에게는 단도직입적으로 죄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저주’의 말씀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림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린 사람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내리시는 저주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린 것에 대한 엄정한 심판인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유일하게 사람이 아니라 뱀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을 유혹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파괴했기 때문에 뱀에게 저주가 선포된 것입니다. 뱀이 저주를 받았다는 것은 뱀이 비록 하나님의 피조물이기는 하나 은혜의 원천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갔으므로 하나님께서 다시 은총을 베푸시는 것을 포기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뱀에 대한 심판은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흙’은 ‘티끌’ (13:16), ‘재’(민 19:17)로도 번역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먹다’의 원어는 미완료형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미완료형을 사용한 본문은 뱀이 이후로 계속해서 땅의 티끌을 먹게 될 것이라는 저주인 것입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뱀의 저주를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범죄자들은 이와 같이 티끌과 같은 비천함 가운데 헤어날 수 없는 비참한 운명에 빠진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며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본문은 초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여자의 후손은 동정녀 마리아에 의해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저자는 독자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 것인가? 구약 신학자 중 한 분이신 김근주 목사는 본문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뱀은 배를 이용해 낮게 움직이기에 사람의 뒤꿈치를 문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사람은 직립보행을 하기에 높은 곳에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뱀이나 사람이나 모두 상대를 상하게 하므로 이 싸움은 누가 이기고 누가 진 싸움이 아니란 것입니다. 이 구절이 말하는 것은 뱀과 사람 사이의 적대감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 특히 여성에게 있는 뱀에 대한 공포나 혐오를 설명하는 구절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훗날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가 오시면 둘 사이의 적대감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사 11:8). 그러면 창세기의 첫 독자인 바벨론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본문을 읽으면서 메시아 대망 사상이 싹틀 수 있었을 것입니다.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본문에서 하나님이 하와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고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의미는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심적인 괴로움까지 포함한 모든 전인적인 고난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죄악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그 가운데 하나님의 큰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고통’이란 말 가운데 ‘모양을 만들다’란 뜻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오는 해산의 고통은 장차 범죄의 결과로 인간이 당하게 될 모진 고통의 복사판임이 암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당하는 참기 어려운 고통 가운데 해산의 고통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해산의 고통이 바로 죄의 결과란 사실은 장차 죄지은 인간이 당할 수밖에 없는 고통이 얼마나 클 것인지를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자에게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4장 7절에서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에도 있습니다. 즉 양쪽이 서로서로 지배하고 다스리려고 갈등하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이제 여자와 남자는 서로를 지배하고 다스리고 제 뜻대로 하려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라 죄악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남자가 여자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것은 성경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죄의 권세에서 구원된 우리들에게 있어서 남녀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본문은 잘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군림하지 않고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공동체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가정생활이 천국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본문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1:27) 자신에게 직접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들은 아담이(2:16-17) 자신의 말에 순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뱀의 꾐에 빠진 아내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를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땅까지 저주를 받아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멈추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즉 여자가 해산의 고통과 수고 가운데 있다면 범죄 한 남자 역시 일생을 노동의 고통과 수고 가운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 또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며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 식물들도 인간이 타락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식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이것들은 일종의 돌연변이와 같은 현상으로 인간을 괴롭히는 잡초로 변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 타락은 원래 창조때의 아름다운 자연계조차 퇴화시켜 인간과 적대적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범죄하여 하나님과 교류가 단절된 인간의 무가치함은,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이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간다면 흙으로만 지음 받은 다른 동물과 별반 다들 바가 없다고 저자는 독자들에게 강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흙과 같은 티끌 같은 존재로 살아가고 있지나 않은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