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

[읽기 쉬운 창세기강해]#22. 6:9-12. "노아의 족보"

이헌교 2025. 6. 2. 16:22

 

 

오늘 본문은 노아의 의로운 삶과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구원의 계획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인류의 급속한 증가와 더불어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유입된 죄 역시 온 땅에 창궐하여 세상은 하나님이 심판을 작정하실 만큼 죄악의 어두움으로 뒤덮이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그와 같이 죄악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시대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자 한 의인 노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본문은 그러한 노아를 통해 자신의 인류 구속 계획을 중단 없이 이끌어 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와 계획을 암시해 주고 있다고 본문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 단락의 마지막 절을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은혜를 입었다는 말이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말일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노아만을 그러한 심판에서 구원하기로 작성하셨다는 것입니다.

 6:9-10,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아담의 타락 이후 인류 초기 역사를 감싸고 있었던 죄악의 어두움이 씻겨 나가고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될 노아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될 것이 본문을 통하여 예고되고 있습니다. 즉 본문은 이후 전개될 내용이 인류 보편 역사를 객관적인 관점에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노아를 중심으로 기록한 것임을 노아의 족보란 말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의인이란 의미는 절대적인 의()가 아니라 어떤 사람의 상대적인 행동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즉 매사에 사심이 없으며 행하는 자세가 옳은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삼하 23:3). 따라서 노아가 의인이었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 무죄한 자였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인류의 시조 아담이 범죄 한 이래 절대적인 의미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3:10)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단지 본문에서 노아를 의인이라 하는 것은 죄악이 충만하였던 당시 상황 가운데서 나름대로 공정함과 의로움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는 상대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세요, 노아가 마구 죄악을 저질렀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심판에서 제외하셨다면 그런 하나님을 누가 따르고 경배를 하겠는가? 그리고 본문에서 노아에 대해 완전한 자라고 소개를 하고 있는데 이는 노아의 생애 전체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려는 노아의 삶의 전반적인 자세를 보여 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흠 없는 예물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도 이 단어가 사용된 것을 볼 때, 노아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기에 합당한 모습을 가졌음을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과거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과 같이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5:22). 원어의 뜻은 부부관계를 맺다란 뜻이 있을 만큼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의 세 아들, 즉 셈, , 야벳이란 세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본문에서 다시 한번 언급하는 것은 이 세 사람이 홍수 후에 인류 역사를 새롭게 시작할 중요한 사람들이란 암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6:11-12,“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본문에서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란 의미는 어떤 물질적인 것이 해를 받아 썩어지거나 황폐해지는 것을 나타낼 때 쓰이기도 했지만 도덕적인 부패를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던 단어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우상을 숭배하거나 하나님께 경배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종교적인 타락을 지적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출(츨 32:7, 32:). 본문 또한 노아 당시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심히 부패하였을 뿐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우상숭배가 심하였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하나님 앞에서 부패했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악을 행한 것은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즉 노아 시대 사람들은 가치관이 악을 행하는 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과거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고 공개적으로 살인을 자랑하는 노래를 불렀던 것과 (4:23-24)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들은 하나님의 간섭 없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인간들의 상태를 저자가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것은 인간 세상을 온갖 죄악으로 가득 차 버리게 하는 결과를 낳으며, 그 결과 땅은 조금의 선함조차도 발견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지금 자비하시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 왜 심판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본문은 당시 사람들이 삶이나 행동 방식이 그릇되었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 있어서도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란 의미는 인간을 나타내는 용어가 있으나 여기서 가축의 살코기(16:12, 7:9)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는 빠사로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영적인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세속적이며 쾌락만을 추구하는 동물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자는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자들을 영혼이 없는 동물과 다를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2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이 말의 의미는 가치관을 바꾸라고 바울은 강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는 출석하지만 그 가치관이 바뀌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과연 심판 때 어떤 결정을 내리실까? 이 시간 나의 가치관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향하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