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

[읽기 쉬운 창세기강해]#33. 10:1-32. "노아의 계보"

이헌교 2025. 6. 20. 16:32

 

오늘 본문은 노아 후손의 계보에 대한 내용입니다. 본장에서는 홍수 심판 이후에 인류가 노아의 세 아들을 거점으로 하여 세계 각 종족과 민족으로 급속히 분화해 나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1절의 서론에 이어서 2-5절은 야벳으로부터 갈라져 나간 후손들의 명단을, 그리고 6-20절은 함으로부터 갈려져 나간 후손들의 명단을, 21-31절은 셈으로부터 갈려져 나간 후손들의 명단을, 그리고 32절은 다시 한번 이상의 세 계통별 명단을 노아의 세 아들을 기점으로 서로 갈라져 나간 종족과 민족의 분화를 보여 주는 것임을 언급하며 끝맺습니다. 노아와 그 후손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셨고, 그에 이어 10장의 족보는 노아 이후 인류가 온 땅으로 흩어져 번성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0장은 11장 사건과 대조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합니다. 10장에서는 흩어져 살아가는 인류를 보여주는 반면, 11장은 흩어지지 않으려는 인류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셈, 함 야벳 등 노아의 세 아들별로 기록된 각각의 후손 민족들의 목록은 그 어떤 면에서도 통일성이 없습니다. 먼저 그 세대수에 있어서도 야벳과 함은 단 2대에 걸친 명단만 기록된 반면 셈의 경우는 4대까지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각 계통별로 언급된 후손들의 명단 수에 있어서도 야벳 계통이 14, 함 계통이 30, 셈 계통이 26으로 서로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본장의 족보는 1-11장 사이에 기록된 여타 족보들과 관련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1-11장에 걸쳐서 창조 및 타락, 홍수 심판, 바벨탑 사건 등 각 주요 사건들 사이에 나뉘어서 기록되었지만 결국은 상호 연결되어 태초 아담에서부터 구약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최초의 직계 조상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 택한 혈통이 계속 이어짐을 보여 주는 소위 창세기 일련 족보에도 직접적으로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장의 족보는 그 단독으로서 순수하게 대홍수 심판 이후 노아의 세 아들을 기점으로 인류가 다시 급속히 번성하여 다양한 종족과 민족으로 분화되어 간 사실만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10:1,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본장에 수록된 명단 가운데 야벳 족속은 14족속, 함 족속은 30족속, 셈 족속은 2626 족속으로 모두 합치면 70족속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70’은 세계 열국을 상징하는 숫자이며,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나타내는 숫자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본장에 수록된 7070 족속이 나오는 것은 단 한 나라도 빠짐없이 세계 모든 나라가 다 노아의 후손이며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 가운데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흔히 노아의 아들들 가운데 셈은 황인종, 야벳은 백인종, 함은 흑인종이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 또는 성경 외 문헌에서도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당장 함의 후손 가운데 가나안은 아프리카와는 무관하게 가나안 땅에 살고 구스의 자손 가운데 니므롯은 바벨론과 앗수르 지역에 사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본장의 내용은 고대인들이 이해했던 당시를 기준으로 온 땅에 사는 사람들의 갈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니므롯과 연관된 내용은 앗수르와 바벨론 같은 나라의 기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본문은 앗수르, 바벨론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이 그들의 시대에 그렇게 강한 나라가 처음에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설명하려는 의도에서 생겨났다는것이 신학자들의 설명이라고 합니다.

 2-5절은 야벳의 자손에 대한 계보입니다. ‘야벳의 이름의 뜻은 확장하다라고 합니다. 이 이름의 뜻대로 야벳의 후손은 인도-유럽족이 되어 유럽 전지역과 소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고 성경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5절에서 해변에 살고 있는 자들의 본래 출처가 야벳의 계보라고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 저자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6-20절은 함의 후손에 대한 계보입니다. ‘의 이름의 뜻은 뜨겁다’, ‘덥다라고 합니다. 이는 함의 후손이 뜨거운 곳을 중심으로 확산된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아로부터 저주를 받은 함의 후손들의 족보를 보면 그들은 그들의 조상 함이 노아로부터 저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중심한 기름진 땅을 차지함은 물론 건장한 체력을 갖춤으로써 초기 역사 동안 크게 번성했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구스의 아들인 니므롯의 번성은 참으로 놀랍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니므롯은 유브라데 강변의 시날 땅을 중심으로하여 구 바벨론 제국을 세우는 등 당대에 최고의 번성을 누렸다(8-12)고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세상에서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가 택한 자에 비해 더 번성할 수도 있음을 시사해 준다고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들이 택한 백성에 비해 더 번성할 수도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도 일반적인 은총을 베푸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는 방편으로 사용하시고자 그들을 번성하도록 섭리하시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16:4). 이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베드로후서 2:17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즉 세상의 부와 권력은 허무한 것일뿐 악인의 번성이나 형통을 부러워하며 그들의 삶의 모습을 모방하거나 좇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1-31절까지는 셈의 후손의 계보입니다. ‘의 이름의 뜻은 명성이란 뜻을 지녔다고 합니다. 이는 셈이 구속의 역사가 기록된 성경에서 함과 야벳에 비해 큰 명성을 지니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구약 선민 이스라엘이 바로 셈의 후손이고 그의 혈통에서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셔서 구속의 역사를 완성한다는 것을 이름을 통해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21절에서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란 말의 의미는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직계 조상이며 히브리 민족이란 이름의 근원이 되는 인물인 에벨을 특별히 부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에벨이란 이름을 밝힌 것은 앞으로의 성경 역사가 셈의 후손 가운데서도 특별히 에벨의 후손인 히브리 민족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임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에벨이란 이름은 건너온 자혹은 건너편이란 의미를 가지며 이는 이브림(히브리)’ 과 그 어근과 뜻이 동일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에벨이란 이름은 아브라함이 유브라데스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이주하기 이전에 그의 후손들이 유브라데스 강 건너편에 살았음을 암시하는 이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란 민족의 명칭은 히브리 민족이 에벨의 후손이란 사실과 더불어 히브리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유브라데스 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이주하셨음을 반영하는 이름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히브리란 이름은 에벨과 어떤 면에 있어서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14:13). 따라서 본문에서 에벨이란 이름을 특별히 밝힌 것도 12장 이후 전개될 히브리 민족의 태동과 셈의 족보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함의 후손 가운데는 세상 처음 영걸’이며’ 이며 ‘특이한 사냥꾼’으로’ 불려진 니므롯과 같은 사람이 있었으나 셈의 후손의 족보 가운데는 특별히 기억할만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셈의 족보 가운데는 셈-아르박삿-셀라-에벨-벨렉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택한 혈통이 있었습니다. 이 혈통을 따라 후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태어났고(11:10-26)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으며, 또한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무수한 신앙의 사람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셈은 실로 그 이름의 뜻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별 볼 일 없이 보여도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역사하시면 그는 실로 하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됨은 물론 찬란한 믿음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후서 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라 말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영적인 셈의 후손인지를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