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창세기강해]#4. 1:9-13. "셋째 날 창조"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땅과 바다, 그리고 식물을 창조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성경은 천지창조가 되었을 때는, 지구는 온통 물로 덮여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물러가라” 했더니, 물이 물러가면서 땅이 올라와서 땅과 바다가 나누어지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온통 바다였던, 지구의 땅을 솟게 만드셔서, 땅과 바다가 나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의 경계까지 정해주셨는데 그 경계를 넘어오면 재앙인 것입니다(렘 5:22). 다시 말하면 쓰나미가 몰려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신 자연의 법칙을 잠깐 놓으시는 것이 바로 자연재해인 것이라고 성경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셋째 날까지, 생물이 존재할 수 있을 터를 만드신 것입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의 최고의 피조물인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대기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먹거리인 씨 맺는 채소와 과실까지를 셋째 날까지 다 만드신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땅과 바다의 비율이 항상 7:3으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 비율이 조금이라도 어긋나게 되면 생태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합니다. 만약에 바다의 점유가 지금보다 더 높아지게 되면, 수증기가 지나치게 많이 증발해서, 온통 이 땅은, 습지가 되어버리고 그리고 바다의 점유가 낮아지게 되면, 가뭄이 들어서, 생물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바다와 땅은, 7대 3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들의 일상에서 살아계셔서 간섭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1:9-10,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물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물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리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히브리어 원어의 뜻으로 해석을 하면 천하의 모든 물들이 한 곳으로 모여 하나의 바다를 이루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제히, 동일하게, 함께 모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즉 물들은 물들끼리 서로 모이게 되어 땅과 경계를 이룸으로써 자기의 영역을 지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물들은 제멋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모여 일정한 범위를 이루게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시므로서(렘 5:22)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시 104:6-9). 마치 바다에 “문과 빗장을 채우신 것”과 같이(욥 38:8-11) 하나님께서는 물의 영역을 고정시키심으로 자연계의 질서를 정하신 것입니다.
10절에서 “물을 땅”이라고 말한 “물”은 바다가 한 곳으로 모여지므로 모습을 드러낸 ‘마른 땅’‘마른땅’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1절의 ‘천지’에서 ‘지’와 동일한 단어이나 그 뜻은 다소 다르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절의 땅은 하늘과 대칭되는 개념으로 물과 분리되기 전의 지구 전체를 가리키는 반면 본절의 땅은 바다와 대칭되는 개념으로 육지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동일한 단어라 할지라도 그 단어가 포함된 문장에 따라 그 의미가 확대 혹은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바다로 표현된 단어는 단순히 ‘바다’(12:8, 출 10:9) 뿐 아니라 나일 강이나(사 19:5) 유프라테스 강(사 27:1, 렘 51:36)과 같은 강 및 내륙의 호수 등을 가리킬 때도 사용된 “얌”의 복수형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바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바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이루는 근원이 되는 모든 강물이나 지구상의 숱한 호수들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땅과 바다가 분리되어 물은 물대로 모이고 마른땅이 그 뒤로 모습을 드러내는 장대한 역사에 대해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시 24:2)라고 찬송을 했습니다.
1:11-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하나님께서는 바다와 분리된 이 땅 위에 최초로 식물이 나게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제 5일 째 새와 제6일째6 짐승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제3일에3 동물들이 살 수 있는 환경과 먹이를 제공하기 위하여 먼저 땅과 식물을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주도면밀한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심을 잘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맺는”이란 단어의 뜻은 ’파종하다‘ (레 25:22), ’농사하다‘ (23:10), ’거두다‘(출 23:16)란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씨 맺는 채소는 인간이 활용하여 파종하고 농사하여 거두어들이는 대상이 될 것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인간을 위해 창조하셨으며, 인간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에서 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열매 맺는 능력을 나무에 부여하셨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무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러한 능력을 발휘하여 능동적이며 지속적으로 열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노력이 부족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찍힘을 받아 불에 던져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마 3:10). 이러한 원리가 인간에게도 적용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끔찍하다는 것을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그 포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셋째 날까지 하나님이 나누어 놓으신 것은 절대 합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즉 빛과 어둠이 합쳐서도 안 되고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이 합쳐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합쳐진다면 제2의 노아의 홍수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날에 창조하신 바다와 땅도 합쳐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분리의 원리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과 합쳐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구별됨이 바로 ’거룩함‘이라고 표현합니다. 세상의 삶의 원리가 있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성도들은 십자가의 삶의 원리로 사는 것이고, 세상은 힘의 원리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남‘은 세상의 힘의 원리를 거부하고 십자가의 사랑의 원리로 살아가고자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의 개념인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물과 땅이 구별되듯이 진정 구별된 하나님 나라백성답게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