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

[읽기 쉬운 창세기강해]#40. 13:5-13. "롯의 분가"

이헌교 2025. 7. 3. 15:24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과 롯의 분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본문을 보면 각자의 풍부한 소유로 인해 목초지와 물 부족 등의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한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은 서로 분리하기에 이릅니다. 유목민에게 있어서 초지와 물은 생명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유목 사회에서 초지와 물은 언제나 분쟁의 불씨였던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보면 아브라함의 소유와 롯의 소유가 심히 많아지자 그들의 목자 사이에서는 서로 초지와 물을 많이 확보하기 위한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다툼은 비록 목자들 간의 다툼이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브라함과 롯 자신들이 다툰 것이나 다름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같은 혈육이자 같은 신앙의 동지로서 그들에게 결코 덕이 되지 못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결단을 내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롯과 분리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13:5-7,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본문은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는 내용입니다. 롯도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많은 재산을 모았음을 본문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본문에서 롯의 재산이 급격히 불어난 사실을 지적하는 것은 이 풍성한 재산이 롯과 아브라함이 헤어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란 것을 이야기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아마도 팔레스타인 전역에 몰아닥친 기근에서(12:10)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목초지가 부족했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며 또한 그 땅에 이미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도 목초지가 부족한 하나의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분쟁의 원인은 가축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 성경에서 재산을 모으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삼하 6:12, 대상 13:14, 42:10-17), 하지만 본문에서 재산의 축적은 다툼과 분리의 씨앗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마태복음 6:25-33절에서 보면 물질이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물질을 하나님 뜻대로 사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신약 성경을 알고자 한다면 구약 성경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7절에서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고에서 그 원어적 의미는 말의 언쟁을 포함하여 물리적 충돌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주먹질을 하면서 격렬하게 다투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에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언급하는 것은 당시 아브라함이 머물고자 하였던 곳은 기득권을 가진 종족들이 이미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후에 그 땅에 들어온 아브라함과 롯이 목초지를 확보하는 데는 더 큰 어려움이 있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13:8-9,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본문은 아브라함이 롯에게 서로 분리하자고 제안하는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한 친족이라고 말하지만 혈연보다도 여호와의 약속을 좇아가는 신앙 공동체에 속했던 자였으므로 아브라함은 그를 혈연관계로서의 가까운 사이라는 외형적인 사실을 더하여 영적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동반자 의식을 가지고 그를 대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롯도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후서 2:7에 보면 롯은 의로운사람으로 평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문화에서 생각한다면 아브라함은 연장자로서 거주지 선택에 우선권이 있었고 롯을 보호할 가장으로서 권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혈육 간의 분쟁을 막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통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평화를 사랑하는 온유의 사람이며 또한 겸손의 사람이었음을 성경 저자는 독자들에게 암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로마서 14: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라고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9절에서 보면 아브라함이 지대가 높은 벧엘에서 넓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내려다 보며 겸손과 양보 정신을 발휘하여 조카 롯에게 거주지 우선권을 주며 분가를 제안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물론 아브라함의 인격을 보여 주는 것이지만 더 나아가서 이는 아브라함이 굳이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12:7) 굳게 믿는 신앙의 사람이었음을 성경 저자는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애굽에서의 사건으로 인해 그의 신앙은 한층 성숙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 또한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 더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미련 없이 물질을 포기해야 한다는 믿음을, 마태복음 4:20, “저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13:10-13,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본문은 롯이 비옥한 요단 들을 선택하여 떠나는 내용입니다. 본문에서 눈을 들어 바라본즉이라고 이중적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당시 롯이 땅의 선택의 우선권을 주는 아브라함의 제의를 받고 이를 사양하기보다는 오히려 좋은 기회라 여기고 보다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매주 신중하게 살펴보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롯이 이러한 신중한 방법으로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후에 북방 연합군의 왕들에 의해 전쟁 포로로 잡혀 갈 뿐만 아니라(14:12) 그가 거한 소돔 땅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결과에 이른 것은(19:24-25), 인간적인 선택의 결과가 파멸을 초래한다는 것을 성경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소알은 저지대였으므로 물이 풍부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물이 부족하여 목초지가 적어 늘 곤란을 겪었던 롯에게 있어서 마치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이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또한 12절에서 지역의 도시들에 머물렀다는 것은 성벽이 있는 규모를 갖춘 정착지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롯이 이러한 도시에 거주하였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단순히 가나안 땅에 거하였다는 표현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롯은 화려한 도시를 향하여 나아갔고 결국은 죄악의 도성 소돔에 거주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3절에서 말하는 죄인의 히브리어 핫타벗어나다’, ‘빗나가다란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죄가 바른 길에서 벗어나며 과녁에서 빗나간 화살처럼 정도(正道)를 걷지 못하고 반드시 도달해야 할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을 가리킴을 보여 준다고 합니다. 즉 당시 소돔 사람들도 하나님이 정한 기준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스스로의 향락이라는 목표를 위해 살았기 때문에 이처럼 죄인이라 규정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소돔 사람들에게 큰 죄인이라고 표현한 것은 당시 소돔 사람들의 죄악상이 사람들의 상상을 넘어설 만큼 대단히 심각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소돔 사람들은 윤리적 종교적 죄악상이 극에 달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롯처럼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에만 따라가면 파멸의 길에 다다른 다는 것을 성경 저자는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요한일서 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라고”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아버지의 것이 아닌 세상의 것을 사랑하고 있지나 않은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