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출애굽기강해]#98. 33:7-11. "모세 회막을 짓다"
&nbs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재 출애굽 한 후 가장 평온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싶었던 장신구를 가지고 있었으며, 쫓아오는 애굽 군인들도, 아말렉 족속도 없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편하고 좋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는 표적이 없어진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제멋대로 날뛸 때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난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했는가?'라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33: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회막'은 하나님과 백성이 만나는 장막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고대 세계에서는 거의 모든 족속들이 그들의 신으로서 어떤 형상물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도 눈에 보이는 어떤 신앙의 상징물을 절실히 요구했을 것입니다. 금송아지 숭배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항상'이라는 말은 모세가 이런 일을 한 번만 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반복했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난 사실을 깨닫고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진 밖으로 장막을 들고나가서 그곳에 회막을 세웠던 것입니다. 여기에 언급된 회막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만들라고 지시한 성막과는 다른 것입니다. 아직 그 성막을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회막이 진 바깥에 있다는 것은 진과 회막이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즉 진은 회막과 구별되는 세속적인 곳, 다시 말해서 죄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부여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모세를 따라 회막으로 나갔다는 것입니다. 모세를 따라 회막으로 나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숭배할 때 그들도 같이 숭배를 했을까? 아니면 이건 아니지 하면서 괴로워했을까? 이 회막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는 시작이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진 안에서도 공식적인 예배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진 밖에 회막을 세웠다는 것은 지금 현재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33: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이것은 존경과 경외를 나타내는 동작으로,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는 이를 듣는 백성들이 모두 일어섰던 것입니다. 이들은 모세가 회막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았다는 것은 그 시간은 그들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임재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 정신이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33:9-10,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드디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회막 문에 세워지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름 기둥이 다시 돌아온 것을 보고 너무나 기뻐서 모두 장막 문에 서서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금송아지-다시 하나님의 순으로 경배의 대상을 달리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회막으로 나가지 못하고 이처럼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하며 하나님을 경배한 것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거리감'이 생겼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3: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대화. 이것이 기독교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를 '말씀의 종교'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단순히 사람을 흥분시키고 감동을 줌으로써 세상의 모든 번뇌를 사라지게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와의 진정한 사귐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들이 소원하는 기도를 들어줌으로써 '내가 여기 있다 그러니까 나와 사귀자'하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자기의 기도가 응답을 받았다며 자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백성이라며 자랑하기에 바쁜 우리들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과의 사귐은 잊어버리고 그 은혜만 간증하기 바쁜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면 그다음의 단계인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과 금송아지를 번갈아 가면서 숭배하고 경배하는 경우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칼빈은 나이 많은 장로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젊은 여호수아를 회막 관리자로 임명한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젊은'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회막을 관리하지 않고 여호수아가 관리한 까닭은 회막이 임시 성소이기 때문이고 아론은 금송아지 숭배의 직접적인 책임자이기 때문에 일종의 문책으로 당분간 제사장직을 맡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로서 여호수아가 모세 다음에 이스라엘을 이끌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도자의 자질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부터 훈련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 공동체가 부패하면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임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날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가득하게 느껴지는 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들은 모세가 지은 '회막'을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밖에서 모세는 조용히 회막을 지어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바랐던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현재 암울한 이 세상에 머물기를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 자신들부터 시작을 해보는 것입니다. 모세는 회막을 지었을 때 누구에게 강요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을 앙모하는 자들이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아합 왕 때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을 따르는 선지자들을 무려 7,000명이나 숨겨 났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왕상 19:8).
이 시간 나는 과연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위하여 기도를 한 적이 언제인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