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강해

[읽기 쉬운 히브리서강해]#17. 7:1-10. "예수님의 대제사장직"

이헌교 2024. 10. 31. 16:21

 

오늘 본문은 히브리서의 핵심주제인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독자들이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위대함과 그것이 레위적인 대제사장보다 더 뛰어나시다는 것과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에 근거해서만 온전한 구원으로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저자는 그리스도는 레위 제사장들보다 더 뛰어나신 대제사장이심을 증명하기 위해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은 장차 오실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예표하기 위해 창세기 14장과 시편 110:4에 기록된 역사적 인물로서 갑자기 신비스럽게 나타나 시간의 단계를 넘어서 족보나 후손에 대한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은 채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저자는 이미 시편 110:4이 말한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란 구절을 세 차례나 인용한 바가 있습니다(5:6, 10: 6:20). 초기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처럼 저자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자기 오른편 지위에 임명하여 자기 나라가 완성되기를 기다리게 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110:1). 그런데 저자는 이 시편에서 예수님의 제사장직이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다고 할 때, 그 말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창세기 14장에 나오는 멜기세덱은 어떤 부류의 제사장이었는가? 또한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어떤 단서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대답하고자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인 것입니다

 7:1-2,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저자는 우선 창세기의 핵심 본문을 인용한 뒤, 멜기세덱의 이름은 무슨 뜻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멜렉은 ’왕‘을 뜻하고, ’체테크‘는 ’혹은 ’정의‘를 뜻한다. 그렇다면 그는 ’의의 왕입니다. 또는 그는 ’살렘(즉 예루살렘)의 왕이고, ’샬롬‘은 ’평화, 평강를 뜻하니 그는 ’평강‘의 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7: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본문을 유대인들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를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즉 그들은 왕과 제사장은 뚜렷이 구별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에서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유다 지파에서 출생한 왕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사장은 레위 지파 출신 그 안에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아론의 가문 출신들이었지만, 왕은 유다 지파 출신으로 명확한 구분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왕이 제사장도 될 수 있는가? 또 왕이 제사장이었다 치더라도, 이렇게 해서 나란히 존재할 두 유형의 제사장직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멜기세덱의 부모나 그의 먼 친척 혹은 그의 출생이나 죽음에 대한 언급이 성경 안에 전혀 없는 것을 발견한 저자가, 본문에서 열거한 것들이 멜기세덱에게 하나도 없었다는 결론을 ’유도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소개되지만, 그가 어디에서 제사장직을 얻었는지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고, 그의 제사장직이 출생이나 죽음과 함께 시작되거나 종결되었느지에 대해서도 아무 언급이 없습니다. 멜기세덱은 이 이야기에서 영구 고정물 비슷한 존재로 그냥 그곳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실은 다음 단락에서 강조되는 논점에서 독자들을 준비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은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나신 것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 또 그분의 제사장직은 레위계 제사장직과 달리 현재까지 중단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4~10절은 레위계 제사장직과 창세기 14장에 비추어 설명된 시편 110편이 예수님께 부여한 제사장직 사이의 대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르는 제사장직이 분명히 우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조차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주었고 멜기세덱이 그를 축복했기 때문이라고 4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증손자 중 하나인 레위보다도 우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이 만났을 때 레위가 자기 조상의 몸 안에 들어 있었다는 의미에서(5), 그가 이미 현존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저자는 독자들에게 결론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멜기세덱 유형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자신이 현존하는 레위께 제사장직보다 훨씬 우월하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결과를 낳습니다. 한편에서 예수님은 현재의 성전과 그에 수반된 모든 것을 정리해고하셨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 우리는 예수님을 참되고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완전히 확신하며 신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예수님을 우리들의 왕이요 대제사장이심을 믿고 신뢰하고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