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히브리서강해]#2. 1:6-14. "천사보다 더 큰 이"
오늘 본문은 새 시대의 대표이신 그리스도가 구시대의 대표인 천사들보다 더 뛰어나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내용입니다. 유대인들은 천사들이 모든 피조물의 으뜸으로서 예언자들보다 뛰어나며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 율법과 하나님의 뜻을 통고받았고 또한 천사들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라고 믿었으므로 천사들을 우상으로까지 숭배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처럼 유대교의 천사론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사실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그랬듯 히브리서의 독자 역시 유대계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히브리서가 쓰일 무렵 일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을 포함한 한 가족의 일부가 되는 데 퍽 익숙해졌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목적이 오랜 준비 기간을 거친 뒤 이제 완전히 드러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즉 포장지 안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포장지를 벗기자 선물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선물은 율법과 예언서가 말해 온 모든 것을 성취하기 위해 보냄 받은 예수님 자신, 하나님의 유일한 친아들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의 초기 단계를 넘어서 이미 동튼 새로운 단계를 즐겁게 살아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많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그리 수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 가운데 대다수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들이 위험천만한 곳으로 길을 잘못 들어 하나님이 이전부터 얘기하셨던 모든 것에 불충하고 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괴상한 주장을 펼치는 이 신흥 운동을 버리고 전에 있었던 곳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율법,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 아래 살아가는 본래의 위치로 복귀하도록 하기 위한 갖가지 압력이 가해졌던 것입니다. 율법은 더없이 장엄한 것인데, 왜 당신은 다른 것을 원하는가? 어쨌든 하나님이 주신 것 아닌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중요한데, 왜 다른 길을 가려고 하느냐고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압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화려한 포장지에 쌓여서 왔던 것입니다. 유대교 전승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율법은 천사를 통해 모세에게 주어졌다고 합니다.
이제 히브리서는 당신이 하나님의 이전 단계의 목적으로 돌아갈 수 없고 오히려 앞으로 나가야 함을, 현 단계 안에 머물지 말고 앞으로 올 새로운 단계로 열심히 매진해야 함을 보여 주기 위해 길게 논증할 것입니다. 이 논증이 유대교의 성서 자체에 근거해 하나님은 언제나 메시아가 천사들보다 우월하기를, 이로써 천사가 가져다준 율법보다 우월하기를 바라셨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서 시작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생각과 달리 율법은 언제든 고정된 적이 없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준비의 일부였습니다. 즉 율법은 궁극적인 선물, 아들의 인격 안에 자기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담길 찬란하고 아름다운 포장의 일부였던 것입니다 여기에 히브리서서는 선물 대신 포장지를 갖고 노는 오류를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서는 메시아가 천사보다 뛰어나시다는 사실에 대해 특별히 세 가지 내용을 말하는데, 각각의 내용은 이 서신에서 나중에 나올 훨씬 더 자세한 진술을 예고합니다. 6절의 첫머리 뒤에서, 천사가 아들을 경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보여 주기 위해 시편 97:7을 인용할 때, 저자는 메시아와 천사들을 대조하기 위해 메시아에 대한 본문 세 걔를 더 인용합니다. 7절에 인용된 시편 104:4에 따르면, 천사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구현체가 아니라 그분의 하인이라는 것입니다.
1:8-9,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 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본문은 시편 45:6-7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 시편의 본문은 왕이 마치 ‘하나님’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이 시편의 본문은 하나님을 닮은 방식으로 주권적 통치권을 행사해, 여러 분문에서 애기해 왔던 대로, 정직과 정의와 참된 율법의 통치를 세상에 시행하는 왕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의 미래의 목적과 관련해 나오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바로 그분이 현실 세계의 정의를 갈망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서신이 그렇게 많은 분량으로 말하는 자기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악이 마침내 어디에도 없는 세상을 창조하시려는 더 큰 목적의 일부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히브리서가 인용하듯, 이 모든 일이 천사가 아니라(천사는 그 과정에서 조수에 불과하다) 기름 부음을 받은 참된 왕, 메시아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이 이 시편의 논점인 것입니다. 두 번째 본문의 출처 또한 시편입니다.
1:10-12,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은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본문은 시편 102:25-27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에 의하면, 현재의 세상, 땅과 하늘이 똑같이 두루마리처럼 말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그 자리를 대신할 때가 오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저자는 율법과 예언서를 통한 하나님의 예비적 목적은 메시아에서 절정에 도달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메시아 자신은 궁극적인 ‘새 시대’, ‘오는 시대’, 하늘과 땅이 새롭게 될 때까지 하나님의 구원과 정의의 계획을 실현할 분이시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천사들은 그 길을 닦고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구원의 통치는 영원무궁토록 이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13-14,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본문은 시편 110편을 인용한 것으로, 초기 기독교에서 예수님의 메시아직 의미를 해석하는 데 널리 사용된 본문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의 참된 왕이 하나님 오른편에 즉위하신다고, 그리고 정의와 구원의 목적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격파할 때까지 그분의 주권적인 통치권을 행사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지금 천사들은 단지 하나님의 목적 속에서 임무를 맡은 하인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교에서 천사들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합니다. 저자는 지금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아들을 실제로 보고 나면, 또 그분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항상 맡도록 되어 있던 역할을 보고 나면, 그보다 못한 다른 겻이나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정말 누구신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그분이 맡으셨고 지금도 맡고 계신 역할에, 그리고 그분이 오직 그분만이 우리 각자에게 요청하신 예배와 섬김의 삶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예수님에게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