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강해

[읽기 쉬운 출애굽기강해]#10. 4:24-26. "십보라의 돌칼"

이헌교 2021. 12. 16. 21:32

 

드디어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가 이해하기가 힘든 장면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과연 오늘 본문에서 성경 저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참 난해한 본문입니다.

 우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모세가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만나고 난 뒤의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아내 십보라의 역할에 주안점을 주어야 하겠습니다. 십보라가 할례를 행한 아들은 단수를 가리킵니다, 그러면 게로솜인지 아니면 둘째인 엘리에셀인지는 모릅니다. 하여튼 두 아들 중 한 명에 할례를 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보면 십보라는 할례를 부정적으로 본 것 같습니다. 그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많은 부족들이 할례를 행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디안 부족은 할례를 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게로솜을 낳았을 때 모세는 십보라에게 생후 팔일에 할례를 행하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지 못한 것을 보면 십보라의 파워가 모세보다 강한 것 같습니다. 모세 또한 할례가 주는 중요한 의미를 모르고 단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정도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성경저자는 다시 한번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언약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창 17:12-14) 말씀입니다.

 이 사건 이후로 모세는 그의 가족을 미디안으로 다시 돌려보내게 됩니다. 왜 모세는 그의 가족을 다시 돌려보냈을까? 앞으로 자기가 할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을 알았던 것일까? 모세는 이제 온전히 혼자인 상태로 애굽에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4:24,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여기서 '숙소'라고 하는 것은 대상이나 광야 여행자들을 위한 임시 처소로 공공건물입니다. '만나사'의 원어 뜻은 적대관계의 만남을 일겉는 말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 하는 것은 모세가 열병에 걸렸는지 아니면 사고를 당했는지 모르나 하여튼 모세가 위독한 상황에 처한 것은 맞습니다.

 4:25,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위급상황이 오면 본능적으로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십보라가 모세가 위독할 때 어떻게 할례를 행할 생각을 한 것일까? 십보라도 하나님을 인식한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는 할례는 그냥 남편 민족의 풍습 정도로만 생각했다가 이제는 하나님의 존재를 본인도 인정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피 남편'이라고 한 것은 무엇일까? 많은 신학자들은 두 가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십보라가 할례 의식으로 인해 소중한 아들이 피 흘림을 당했다는 식의 독설이거나 아들의 피흘림을 통해 가까스로 남편을 구원하게 되었다는 감사와 안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십보라가 모세와 계속 동행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첫 번째 추측이 더 타당한 것으로 보는 신학자들이 많습니다.

 4:26,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주시니라 그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십보라가 할례를 행하고 난 뒤에 모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 사건은 할례를 이야기하는 것이 맞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할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할례를 어디에 간직하고 있는가? 아마도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 2:28-29에서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우리들에게 내재된 하나님과의 언약은 무엇일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인정하고 나의 구원자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들 마음 안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부름을 받았다는 증거가 남을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일까? 바로 나에게서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일 것입니다(갈라디아서 5:22-23).

 오늘 본문을 사역자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전에 자기 가정부터 다스려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문자적으로 해석을 하기에는 본문 말씀이 너무 심우 해서 우리들 삶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을 다스리고 있는 것은 누굴까? 나의 본성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성품인가? 아니며 미혹한 악한 영인가?를 항상 우리는 점검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이 다스리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면 바로 이때가 우리는 하나님의 다리를 붙들고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들에게 성령을 충만케 해달라고~ 이런 기도는 하나님이 항상 응답해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것은 성령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만큼은 항상 해야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종교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타성에 젖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타성에 젖으면 하나님이 간섭하신다는 것을 명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