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강해

[읽기 쉬운 출애굽기강해]#16. 7:8-13. "하나님의 능력"

이헌교 2021. 12. 29. 17:07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전가시킴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럼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 자체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가 우리의 것으로 되는 '도구'내지 '통로'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하나의 무슨 실체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은 분리되거나 홀로 있는 어떤 실체가 아닙니다. 믿음은 그 대상과 분리시켜서는 안됩니다. 믿음은 항상 그 대상에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이루신 공로요 그의 완전한 '의'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그들 마음 안에 예수님이 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로써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다고 시인해도 우리들 마음에 성령 하나님이 살아서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반문할 것입니다.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면" 이 본문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면~로마서를 집필할 당시에는 예수를 주로 시인하면 순교할 각오가 있어야만 입으로 시인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이런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전체의 숲을 보아야 합니다. 나무를 보고 해석하면 자칫 이단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9절을 말씀을 가지고 나온 이단이 18C에 있었던 '산데마니안 주의'가 있었다는 것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칼빈은 "믿음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얼마나 열심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7:8-9,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희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고대 애굽인들은 소위 신의 사신으로 자신하는 자들은 기적적인 증거로써 자신들을 보낸 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여야 했습니다.

 7:10,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이 지팡이는 원래 모세의 지팡이었지만 아론이 던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적을 행하시는 주체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7:11-12,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를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마술사들이 행한 기적은 고대 애굽에서 흔히 성행했던 마술의 일종으로 그것은 거짓 기적과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는 하나님이 뱀을 창조한 것이었습니다. 애굽의 왕 바로들이 착용했던 왕관에 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 뱀은 바로의 왕권과 통치력을 상징했습니다. 따라서 아론의 뱀이 바로 일당의 뱀을 삼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 앞에서 무력한 세상 권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7: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이 기적을 보고 바로가 마음을 돌이켰다면 우리는 열가지 재앙을 보지 못했을 뻔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 종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 권세에 눌려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알게 하고 믿게 하시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함이 없으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배워왔고 그렇게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왜 예수를 믿는 사람들끼리 모인 교회가 이렇게 시끄러울까? 사람들은 우리들이 죄인들이기 때문에 교회는 온갖 죄인들의 집합소이기 때문에 항상 시끄럽다는 것이라고 자위를 합니다. 저도 신학을 하면서 이 점을 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계속하다가 보니 점점 복음이 무엇이고, 구원은 어떤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생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자라지 못하고 마냥 어린아이의 신앙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들은 어린 아이처럼 관심을 받으려고 아니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 같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연륜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장성한 분량만큼 성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인도하는 것이 사역자의 몫인 것입니다.

 장님이 인도하면 다같이 구덩이에 빠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사역자가 강대상에서 전하는 한마디의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들의 생사가 걸린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역자는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공부를 습관처럼 해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다면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 시간 나는 하루에 몇 시간을 하나님에 대한 공부로 할애를 하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