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강해

[읽기 쉬운 출애굽기강해]#20. 8:20-32. "파리의 재앙"

이헌교 2022. 1. 5. 16:26

 

  오늘 본문 말씀은 네 번째 파리의 재앙입니다. 이 파리의 재앙부터는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고 있는 고센 지방에는 파리의 재앙이 일어나지 않게 구별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나일강의 피, 개구리, 모기의 재앙은 같이 겪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재앙에 참여시키기 않고 네 번째부터 그랬을까? 를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구별된" 벡성임을 가르쳐주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능력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고난에 대처해야 하는가? 고린도전서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이것이 구별된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시키기 위하여 얼마나 열심인 것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8:2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나님은 자기가 택한 백성에게 끊임없는 부르심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는가는 생각에 다시 한번 하나님의 열심이 보입니다.

 8:21, "내가 만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과 네 집들에 파리 떼를 보내리니 애굽 사람의 집집에 파리 떼가 가득할 것이며 그들이 사는 땅에도 그러하리라" 70인 역에서는 '개파리떼'로 번역했습니다. 이 파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파리가 아니라 짐승들과 사람에게 달라붙어 무서운 병을 옮기는 지독한 해충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한낱 미물에 불과한 파리를 사용하셔도 우리 인간들은 심한 고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성과 인간의 보잘것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8:22-23, "그날에 내가 내 백성의 거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여기서 '구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신의 백성으로 인치신 구속의 행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일'이라고 밝히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바로 이 재앙의 근본 원인이며 이 재앙이 바로의 권세를 꺾고 이스라엘을 구원코자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8:2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바로는 하나님을 섬기되 이 땅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기하기 싫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또한 세상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세상이 주는 달콤함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일만 하나님에게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굉장히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또한 재물과 하나님을 같이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8:27,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고센에서 약속의 장소인 시내산까지 사흘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과 약속된 장소에서 제사드리기를 원한다는 뜻의 완곡한 표현입니다.

 8:28,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이 조건 속에는 여차하면 군사를 풀어 이스라엘을 다시 끌고 오겠다는 속셈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간구하라' 이는 바로가 여호와의 절대성과 유일성을 인정해서 한 말이라기보다 다신교적 종교관을 지닌 그가 또 하나의 신에 불과하다고 여긴 여호와의 도움을 얻고자 하는 이기주의적인 마음에서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파리 떼가 이 땅에서 어서 물러가도록 너희 신께 기도 좀 하라는 뜻입니다. 사실 이것은 진정한 회개의 말이 아니라 재앙의 고통을 면해 보고자 하는 임시방편이었다는 것은 바로가 재앙이 멈추자 그 마음을 다시 완악케 하여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서 알 수 있습니다.

 8:32, "그러나 바로가 이 때에도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강하게 한 것이 아니라 바로 본연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고난이 오면 하나님에게 매달립니다. 그러나 그 고난이 끝나고 나면 다시 하나님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바로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저 또한 하나님을 만날 때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도 힘든 시기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때 로마서 5:3-4 말씀과 고린도전서 10:13절 말씀을 붙들고 버티어 냈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밖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통하여 물질에서 자유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참 간사합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의 바로인 것입니다. 고난이 오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끔씩 우리에게 고난을 주셔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 시간 고난이 당신을 아프게 한다고 생각이 나면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서는 '단독자'인 것입니다. 우리의 고난은 누가 우리를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냥 고난 앞에서 당당하게 담대하게 맞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강하고 담대하게'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