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강해

[읽기 쉬운 출애굽기강해]#34. 14:15-31. "애굽 군대의 추격"

이헌교 2022. 2. 16. 11:56

 

오늘 본문은 그 유명한 홍해 사건입니다. 홍해 사건은 세례로 봅니다. 세례는 과거의 존재방식에 대해 죽고 하나님 중심으로 새로운 존재방식으로 죽음과 부활로 다시 태어나는 내면적인 변화를 상징합니다.

신약 성경에 보면 세례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물로 받는 것, 영으로 받는 것, 불로 받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영적 발전 단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새로이 그리스도교에 입문해서 천국의 '외적 비밀'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교가 가르쳐주는 죽음. 부활, 천국 등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서 윤리적 지침이나 심리적 안위를 얻는 단계입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천국의 '내적 비밀'을 알게 됩니다. 죽음, 부활, 천국 등의 가르침에서 문자적 뜻을 넘어 상징적, 은유적, 영적 차원의 뜻을 꿰뚫어 보게 됩니다. 거기서 더욱 발전하여 불로 세례를 받으면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하나님과 하나 됨이라는 신인합일의 신비 체험을 체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49-50,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여기서 '받아야 할 세례'라는 것이 바로 불세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가까이 있으면 그 불을 받아 불의 세례를 받고, 내 속에 있는 천국. 곧 하나님과 내가 하나 되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애굽 군대가 추격하는 것을 알은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원망하고 그를 공격했습니다. 이런 처지에서 모세도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절망 가운데 소리쳤던 것 같습니다.

 14: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이 구절은 '너는 어찌하여 소리 질러 내게 기도만 하냐?'라고 꾸짖는 말투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더 이상 애원으로 기도만 하지 말고, 믿음의 행동으로 담대히 취하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행동을 통해 그 믿음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될 뿐이기 때문입니다(약 2:17).

 14: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하나님께서는 한 길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것은 바다 가운데 난 길이었습니다. 이 길은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은 지나갈 수 없는 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리도전서 10:1-2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집단적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4:19-20,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구약에서 '하나님의 사자'는 천사보다는 제2위 되신 성자를 가리킵니다. 즉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구름 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한 편은 어두움 가운데 큰 혼란에 빠졌고, 다른 한편은 광명한 세상에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백성과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 사이의 차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추격당하는 가운데서도 밝은 길을 걸어갑니다. 이들에게는 인도하는 빛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4:24,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불, 구름 기둥 가운데서 여호와께서는 애굽 군대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추격을 어렵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바닷속의 마른땅을 밟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애굽인들은 자기 병거만 믿고 바닷속으로 들어왔다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밤새도록 바닷속에서 그대로 혼란만 겪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애굽인들이 자신들이 위험하다고 깨닫고 도망치려고 했을 때 모세가 다시 그 지팡이를 들어서 바다를 가리키자 홍해는 다시 합쳐져 버렸습니다. 애굽이 자랑하던 특별 병거 육백 승과 다른 모든 군대는 전부 홍해 바다에서 몰살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싸움입니다. 결국 우리 신앙에는 중간 지대라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든지, 아니면 애굽의 병거와 마병을 의지하든지 둘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14: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사건을 경험하고 난 후 하나님을 경외하며 모세를 하나님의 종으로 신뢰했습니다. 그러나 이 신뢰는 얼마가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날마다 치루는 영적 전쟁은 우리가 주체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체로 영적 전쟁을 치러 승리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의'를 위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윤리 도덕의 승리라고 자기 자신은 하나님이 없어도 충분히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죄'에 대한 개념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죄들'을 가지고 '죄'라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죄들'은 '죄'에서 파생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이라는 것에서 시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싸움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는 그냥 하나님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죽음의 권세도 물리친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겁날 것이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면 됩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 유효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시간에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를 한 번 점검해봤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