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출애굽기강해]#39. 16:31-36. "만나"
오늘 본문은 만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날마다 그들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만나는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요 6:49-51).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먹고 살리는 것입니다(마 4:4).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날마다 아침에 만나를 거두어서 하루를 먹고살았듯이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아침마다 만나를 먹을 수 있을까? 찬양과 기도와 말씀으로 아침을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침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은 만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셨는지를 본문에서 알아봅시다.
16: 32-33, "모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이것을 오멜에 채워서 너희의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인 양식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니라···"이때부터 만나 1오멜을 담은 항아리를 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 및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함께 언약궤 안에 넣어져서(민 17:10), 광야 생활 동안 보존되어 후대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역사서에 의하면 후일 솔로몬 성전 완공 후 언약궤가 안치될 무렵에는 두 돌판 외에 모든 것은 소실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왕상 8:9). 만나를 이렇게 소중하게 간수하라고 하신 이유는 이 만나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항상 기억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당대뿐만 아니라 그들의 후손들에게까지도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6:34,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 증거판은 율법을 새긴 두 판을 가르킵니다. 근데 모세는 아직 시내산에서 두 돌판을 받기 전입니다. 하나님의 이 모든 것을 순서대로 준비해 두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이끌어가시는 것은 하나님이 다 우리의 앞길을 예비해놓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그 길을 묵묵히 하나님과 함께 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16:35,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그 땅의 소산을 먹자 그다음 날부터 만나가 그쳤습니다(수 5:10-12). 이때가 출애굽 41년 1월 16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만나를 처음으로 먹은 날이 출애굽 원년 제2월 15일이므로(1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먹은 정확한 기간은 만 39년 11개월이 됩니다.
16:36, "오멜은 십 분의 일 에바이더라" 1오멜은 2,3L입니다. 왜 성경은 이런 것까지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 우리들에 대한 은혜와 사랑이 이렇게까지 섬세하고 세밀하게 준비해두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약 40년 동안 먹고살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삶을 40년 동안 살았으며 출애굽 당대의 1세대는 다 죽고 그 2세대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의 소산을 먹을 때 만나가 그쳤다는 것을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나가 그쳤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침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가나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가나안 문화에 급속도로 흡수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원래 이스라엘 민족은 유목민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는 여호와 한 분만 섬기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농경사회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지역은 천수답 지역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비를 관장하는 '바알'을 섬기게 되고 풍요를 상징하는 '아스다돗'을 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를 섬기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도 섬기고 바알도 섬겼다는 것입니다. 즉, 안식일이나 절기에는 여호와를 섬기고 다른 날에는 바알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의 그리스도인들도 같다고 봅니다. 주일은 교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맘몬신을 섬기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다시 한번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앞길을 예비하시는 분이신데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목축에서 농사를 짓는 사회로 바뀌면 당연히 바알과 아스다돗을 숭배할 줄을 알았을까? 그래서 구약은 예수를 기다리는 책인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큰 그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인간들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40년간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다가 하나님의 만나가 그치니까 한순간에 그 마음이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셨고 그 결과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노력이나 힘으로는 세상의 유혹함이나 우리 내면이 본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영적 전쟁은 우리가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는 성령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것은 성령 충만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기도를 할 줄 모릅니다. 그냥 주야장천 하나님을 알라딘 요술램프처럼 사용하는 기도만 할 뿐이라서 하나님은 얼마나 안타깝게 생각하실까~
이스라엘 이라는 한 민족의 흥망성쇠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알아야 하며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우리는 만나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는지를 한 번 점검해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