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출애굽기강해]#66. 23:1-9. "하나님 나라의 법"
출 오늘 본문은 주로 법정에서 소송 사건 때 충분히 발생할 소지가 있는 여러 가지 관련 죄악들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은 약한 자를 보호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잘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정작 하나님은 항상 약한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약한 자들을 위한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이것이야말로 천국이 아닐까? 우리들은 천국 건설의 사명을 받은 자들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3:1,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쉽게 이야기하면 가짜 뉴스를 퍼뜨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원문의 의미는 악한 자의 편에 들어 증언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악에 동조하는 행위이나 곧 자신도 악한 자가 되는 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가나안 땅에는 수많은 술객과 무당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 말씀과 대적되는 것입니다. 이 또한 거짓된 풍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 이외는 거짓된 풍설을 따르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23:2-3,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어 두둔하지 말지니라"성경은 윤리적 행위의 주체가 개인임을 보여주며,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해 볼 때 다수의 결정이 올바르지 않을 때는 혼자서라도 담대히 진리의 편에 설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마 7:13,14). 본문은 어떤 경우이든 간에 판결을 담당한 사람은 공정을 유지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반칙을 쓰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공부도 하지 않고 좋은 대학에 합격시켜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반칙을 하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23:4-5,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짐을 부릴지니라" 재판과 관련해서 개인적 반감이나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데 오히려 이런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율법의 근본 정신임을 말하고 있습니다(레 19:18).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라'(마 5:43)는 기독교의 정신은 이미 구약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23:6-8,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본문은 특별히 재판관에게 해당되는 교훈입니다. 재판관은 진실 되어야 함 음 물론이고 지적인 면에서도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재판관은 지(7절), 정(6절), 의(8절)를 겸비한 전인격적인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들 재판관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씀인가! 왜냐하면 우리는 지, 정, 의를 갖춘 전인격적인 사람들이 목표이니까!
23:9,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이스라엘 중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에 대한 보살핌은 단순한 인정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애굽에서 역시 나그네 되었던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는 차원에서 행하라는 것이 본문의 요지입니다. 특히 본문은 재판장에게 해당되는 교훈입니다. 성경은 재판장들이 내, 외국인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그들을 공정히 대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디도서 2:12-14,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 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신약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아니 신약 성경이 만든 사회에서 2,000년 지난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신학자 자크 에룰은 '뒤틀려진 기독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떨 때는 구약 말씀을 적용하고 또 어떨 때는 신약 말씀을 적용합니다. 특히 사역자는 성경 말씀이 강조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일까?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 사랑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역자로서 무엇이 선한 영향력인가는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인격적인 분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지극히 상식적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상식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사역을 하면 좋을 것입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자! 그렇지 않으면 성경을 자기의 유익을 정당화 시키는 도구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합시다~
이 시간에 생각해봅시다. 나는 성경 해석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숲을 보는 가, 아니면 나무를 보고 있는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