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16. 16:21ㆍ목회서신강해
오늘 본문은 거짓 교사들의 특징과 특히 그들이 부활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에 대한 내용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났다’(롬 6장)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그분과 함께 일으켜졌으며 실제로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자 있다고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골 3:1-4). 그러나 로마서와 골로새서 둘 다 주장하듯이 이는 미래의 육체적 부활이 남아 있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와 믿음을 통하여 그 궁극적인 사건을 기대하고, 미래에 약속된 것을 기초로 현재에 믿음과 희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의아해 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정말(그들 자신이든 예수님이든) 육체적 부활을 믿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들은 의구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독교 메시지를 조정하여 맞추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은 실제로 미래에 그대로 일어날 실제 부활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육신을 떠난 영원한 천상의 기쁨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영적 체험 같은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바울 이후 100여 년 동안 일부 무리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울이 믿었던 바와 정반대되는 내용입니다. 그런 개념은 물리적 창조물의 선함을 부인하고, 그것을 새롭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부인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궁극적인 정의와 세상을 바로잡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복음과 세상이 아닌, 나와 나의 영적체험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또 그런 개념은 2세기에 나온 더 진보된 글들이 다양하게 보여 주듯이, 끊임없는 추측과 말다툼과 무의미하고 공허한 논쟁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말장난을 시작했다면 위험 신호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견고한 복음에서 벗어나 표류하고 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것들에 맞서, 그리스도인 ‘일꾼’의 기본을 제시합니다.
2:14-15,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본절에서 말하는 말다툼은 신화와 족보에서 비롯된 것으로서(딤전 1;4, 4:7), 당시 거짓 교사들은 디모데가 목회하던 곳에 침투하여 무익한 언쟁과 말다툼을 일으키면서 복음 진리를 왜곡시키고 교회분열을 조장하고 있었습니다(고전 15:12, 갈 2:6). 그러한 말다툼은 진리를 입증하는데 아무런 유익이 없으며 오히려 진리를 가로막고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꾼은 성경을 연구하는 법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법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들, 특히 디모데처럼 수련 중인 젊은이들은 마치 자격시험을 치러 나온 견습생처럼 자신의 일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에 필요한 지식, 설교 기술, 역사적 문화적 판단,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적 지식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파악하고, 그것들을 반드시 갖추라는 것입니다.
2:16-17,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바울은 본절에서 쓸모없이 떠들어 대는 공허한 말을 망령되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망령”이란 단어 속에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히브리서저자는 에서의 믿음 없음을 지적하면서 ‘망령’을 사용했습니다(히 12:16). 즉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 나라의 유업과 상속을 바라보지 못하며, 주어진 현실과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믿음을 버리는 행위들이 ‘망령된’ 것입니다. “나아가나니”의 헬라어 뜻은 “장애물을 밀치면서 앞으로 나아감”입니다. 즉 ‘전진하다’를 뜻합니다. 즉 망령되고 헛된 말을 하는 불경건한 이들은 “악성 종양”이라고 표현한 것인데 이런 것들을 뚫고 전진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악성 종양 같은 자들 중 두 명의 실명을 공개합니다. 후매내오는 디모데전서 1:20에 언급되었지만 빌레도는 이곳에만 언급되는 인물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서신에서 잘못한 사람들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데 이들의 실명을 공개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은 악성 종양처럼 골칫거리였던 것 같습니다.
2:18-19,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었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아마도 이들은 영지주의자들 같습니다. 헬라 철학자들은 영혼은 불멸하지만 육체는 영혼의 일시적인 감옥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이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자들은 선한 영은 부활하지만 물질적인 몸은 악하므로 부활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육체적인 부활을 강조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을 부인하면 그리스도의 육체 부활과 그리스도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고전 15:12-2)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실 이미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영지주의들의 주장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공식 교사였는지 아닌지는 밝히지는 않지만 두 사람이 새로운 개념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즉 ‘부활’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마지막 날 일어나리라 기다리는 영광스러운 미래이며 새로운 육체를 입는 것이기보다는 이미 일어난 어떤 일을 가리킨다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바울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누구든 붙들 수 있는 격언 같은 분명한 경험 법칙을 제시합니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하며 불의를 떠나지 말라고 강조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 굳건한 토대 위헤 집을 세울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불의를 떠나고 있지나 않은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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