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가복음강해]#55. 14:12-25. "마지막 만찬"

2023. 9. 4. 20:27마가복음강해

 

유대교 절기는 대부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구출해 주신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축제는 유월절이라고 합니다. 유월절에는 하나님이 그들을 해방시키신 이야기를 나눌 뿐 아니라, 식탁 옆에 놓인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웠다고 합니다. 그 당시 자유인들은 로마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냥 앉지 않고 비스듬히 누워 식사도 하고 담소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유월절 기념은 매우 종교적인 행위였을 뿐 아니라, 유대인들이 억압을 당한 오랜 세월 동안에는 매우 정치적인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유월절은 “겉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행방된 민족이다”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 주는 절기였던 것입니다. 또한 유월절은 충성심을 지켜 주고,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격려하는 축제였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마지막 유월절 축제기간 동안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고 계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14:12, “무교절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니리 그를 따라가서”당시 남자들은 대개 염소 가죽으로 만든 큰 주머니에 물을 담아 날랐고, 여자들은 항아리에 물을 담아 머리에 이고 날랐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남자를 쉽게 찾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그 남자를 아는지에 대해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30년 가까이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셨다면 단골집은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것을 아셨지만, 유월절 식사만큼은 방해받고 싶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 식사가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제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식사는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을 변화시키는 메시지를 줄 것입니다. 이 식사를 통해 그들은 생명을 얻으려면 예수님의 죽음을 이해해야 할 것이며, 그분의 성취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임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만찬하시기 전에 제자들 중에 자신을 팔 자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14:17-18, “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나중에 왜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 이런 배신자가 있다는 것을 모르셨을까 하는 의심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롯 유다에게 마지막으로 회개할 기회를 주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아무리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팔기로 약속했다 하더라도 아직은 돌이킬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유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굉장히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에 관해서는 많은 예언자들이 미리 말한 바 있습니다(사 53:7-9).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으심은 이미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었으며, 결코 가롯 유다의 배신 때문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다는 마치 골고다를 향해 달리는 마차에 뛰어들어 죽음을 자초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을 뻔”했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21절).

14:22-24,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본문은 이후 교회사에서 많은 논쟁을 가져온 말씀입니다. 특히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서도 이 성찬문제 때문에 루터파, 개혁파, 쯔빙글리파로 나뉘게 된 것입니다. 가톨릭은 예수님의 몸과 피가 화학적으로 변한다는 화채설을 믿었으며, 루터파는 ‘공재설’, 칼빈파는 ‘성령 임재설, 쯔빙글리파는 ‘기념설’을 믿게 됨으로써 개신교 또한 성찬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본문에서 하신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아마도 보통의 가정에서 가장이 하듯이 유월절 이야기를 들려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과거로는 출애굽 사건, 미래로는 이스라엘의 종국적 해방으로 빵과 포도주를 연결시키기 위해 그 이야기를 하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이 곧 죽으실 죽음과 그 죽음을 통해 임할 하나님 나라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새로운 유월절과 연관된 이 식사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이해시키는 중요한 수단이었을 뿐만 아리라. 그 죽음이 그들의 삶과 이 세상을 자유롭게 해 주는 수단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 식사는 예수님이 공생에 내내 하신 하나님 나라 행위와 하나님 나라 가르침의 결정체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식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해해야 그분의 죽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가 그 식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성취한 자신의 죽음을 알고 믿으며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살아가기를 바라시고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성찬식을 할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임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