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38. 8:23-27. "바다를 잠잠하게 하시다"

2022. 7. 20. 15:20마태복음강해

 

유대인들은 항해를 잘하는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북쪽과 남쪽에 있는 페니키아와 이집트는 해운 국가로서 지중해와 그 너머까지 폭넓게 무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육지에 집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약속받은 유산은 결국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바다는 악과 어둠의 장소이자 세력으로서, 위협적이고 거친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때 야훼께서는 바다를 길들이셨고, 불순종하는 예언자 요나를 붙잡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도 바다를 사용하십니다. 마태가 본문을 이야기할 때도 이러한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를 해야 본문을 해석하기가 쉽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지금 마태복음의 첫 독자인 그 당시 유대인의 관점에서 본문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8:23-24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베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갈릴리 호수가 호수임에도 바다라고 불리는 것에 대하여 사람들은 바로 이 강풍으로 인한 파도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갈릴리는 주위보다 지형이 낮아서 가끔 바람이 돌풍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제자들 중에는 갈릴리 어부 출신도 많이 있었는데 그들도 모두 두려워한 것을 보면 평소와는 다른 돌풍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도움을 청합니다(25절)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구약 성경에 나오는 요나의 이야기는 마태나 그의 독자들이 잘 아는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이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요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 반대 방향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큰 폭풍이 일어나서 배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는데 요나는 잠이 들어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깨워서 그의 신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라고 합니다. 요나는 곧 사태를 파악했습니다. 그것은 야훼께서 요나에게 그가 잘못 가고 있음을, 그가 지시받은 대로 해야 했음을 알리시는 표지였던 것입니다. 그는 선원들에게 자신을 갑판 밖으로 내던지라고 합니다. 그들이 그 말대로 하자 폭풍이 가라앉고 바다가 잠잠해졌습니다. 한편 커다란 물고기가 나타나 요나를 삼켰고 그 물고기는 요나를 뭍에 뱉어 냈습니다. 그 후 요나는 니느웨이로 가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합니다.

 여기에서 마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과 요나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이 폭풍은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여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것은 예수님의 권위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표지입니다. 요나 때처럼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지만, 예수님은 다른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절대적인 권위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위대한 표시를 마태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만약에 예수님이 예언자라면 요나보다도 훨씬 더 큰 예언자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나중에 마태는 그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12:41). 또한 요나의 특이한 모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을 진정 품으신다는 표지로 주어진 것처럼, 예수님에 대한 이 놀라운 이야기들도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하고 계신 일은 참으로 새 창조와 같은 일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믿음이 작은자들아”하시면서 꾸짖습니다. 여기서 ‘믿음’은 어떤 것일까? 이것은 일반적인 종교적 반응을 보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일렁이는 거대한 풍랑을 볼 때의 ‘종교적 반응’은 경외감과 공포, 혹은 바다의 신에게 드리는 두려움에 찬 기도일 것입니다.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믿음’은 간단하게 말해서 예수님이 폭풍우에 대해서도 권위를 가지신 주권자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러한 믿음이 별로 없었다고 마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버나움의 백 부장처럼 바깥의 사람들도 정확하고도 놀라운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10절),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을 보고도 아직 그 믿는 자의 범주에 들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왜 그렇게 믿음이 작은 것일까? 제자들뿐만 아니라 그 당시 유대인들의 고정관념 때문인 것입니다. 그들은 구약의 성경에서 다윗 같은 메시아가 온다고 했기 때문에 다윗 같은 메시아를 꿈꾸고 있었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관념은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들 또한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국 간다는 관념에 사로잡히면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진정한 뜻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오서서 “믿음이 작은 자들아”하실 것입니다.

 8: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이제 제자들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을 지도자로 여기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들도 예수님이 치료자이자 선생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들이 예상한 정도를 크게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가 질병에만이 아니라 자연계에 까지도 미치는 것입니다. 질병을 치유하는 치료자들은 제자들도 들어 본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바람과 바다가 순종하는 권위를 가진 자는 처음 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뒤로 미룬 채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그림을 조금씩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교회에서 혹은 개인적 예배를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주님이시며 메시아라는 등등의 고백을 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정말로 예수님을 우리 삶에 대해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면에 대해 권위를 가진 분으로 대하고 있는가?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나는가? 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