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85. 19:23-30. "낙타가 바늘 귀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2022. 11. 21. 10:28마태복음강해

 

오늘 본문은 부자 청년이 떠나간 사건에 대해서 제자들과 예수님과 토론할 때 예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듣고 제자들이 매우 놀랐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19:23-25,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예수님 당시 사회에서는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복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에 비추어 현재 가장 큰 복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부자고, 유명하고, 지주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복의 개념은 눈에 보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놀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간다”는 말씀을 가지고 실제로 예루살렘에 ‘바늘귀’라는 문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낙타가 그 문을 통과하려면 등에 지고 있던 짐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고 해석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낙타’와 매우 비슷한 단어 중에 일종의 끈을 뜻하는 단어가 있는데, 어쩌면 예수님의 말씀은 선원들이 쓰는 끈을 재봉사의 바늘귀에 꿴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해석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앞의 본문에서 보았듯이, 예수님은 자신의 요점을 말하기 위해 크게 과장하시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요점은 열심히 노력하면 해 낼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라고 답하십니다. 즉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불가능한 것이 하나님께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시점이 바로 인간의 모든 계산과 가능성이 멈추고 하나님의 새로운 가능성이 시작되는 시점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듭남의 시점인 것입니다.

 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데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베드로의 대답은 마치 부자 청년의 질문을 연상케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아직까지도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성령 세례를 받기 전의 모습인 것입니다. 즉 거듭남이 되지 않은 제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3 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도 거듭나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다들 거듭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의 결과는 가치관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세상 중심을 살아가던 사고방식을 거듭남으로 인해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아직까지도 가치관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은 진정한 회개를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9:28-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본문은 다니엘 7장을 연상시킵니다. 거기에 보면 악이 타도당하고 하나님 백성이 회복되면서 드디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집니다. 그 새로운 세상이 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사람은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출될 뿐 아니라 새 세상에서 예수님과 함께 다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열두 보좌에 대해서 문자적으로 해석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여 로마제국을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를 세울 때 모두 한 자리를 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어떤 사건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꿈에도 모를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의 모습에 예수님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다시 말하면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현재 우리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은 얼마나 안타까울까

 19: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뒤에 있던 사람이 앞으로 오게 되고 앞에 있던 사람이 뒤로 가게 된다면 바뀐 위치에 따라 사람들은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기뻐하거나 불쾌해 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모든 것을 뒤집어 놓으실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인간은 진리, 지혜, 정의, 구원을 잡으려고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생활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얼마나 깨달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먼저 된 자에서 나중 된 자로 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성경말씀을 상고하고 그 안에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아내고 그렇게 한 번 살아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성 훈련인 것입니다.

 이 시간 나의 영성 훈련은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