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베드로전서강해]#6. 2:18-25. "종에게 권면"

2024. 8. 13. 17:29베드로전,후서강해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이 국가의 시민으로서 취할 자세와 행실에 이어 종으로서 취해야 할 자세와 행실에 대해 권면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 당시 종의 존재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가전제품과 같은 존재였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전기가 끊어지면 겪는 각종 불편한 상황을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그만큼 바울 시대에서의 종은 필요한 존재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바울이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노예제도는 제도적이고 합법적으로 인간성을 말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종은 그 주인의 ’소유물‘이었다고 합니다. 주인들은 종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숙식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소유물‘인 종들을 구박하거나, 신체적, 성적으로 학대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착취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2:18-20,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오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당시 로마제국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지중해 연안 국가들을 정복한 후 그곳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와 시민들에게 전리품처럼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노예의 수가 자유 시민에 비해 약 4, 6천만 명이나 되었으며 노예 문제는 큰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 서신에서도 주인과 종에게 동시에 교훈을 주고 있지만(6:5-9, 3:22~4:1), 베드로는 본문에서 종에게만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본서의 수신자들 가운데는 종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으며, 그들은 자유를 얻으려고 교회에 몰려왔던 것 같습니다. 신약 성경은 노예제도가 악습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종들이 주인에게 불순종하는 것은 당시의 노예법을 어기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정부와 제도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 역사를 보면 크고 작은 노예 반란이나 폭동이 있을 때 많은 노예 신자들이 주동자로 몰려 참혹한 형벌을 받았음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잘못을 저질러서 처벌을 받고 고생을 당한다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이 불의하게 고난을 당할 때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내 행동을 지켜 보시며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하고 참을 수 있다면 그러한 행동은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고 은혜 받았다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똑같은 고난을 당해도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죄의 결과 때문이라면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하나님을 위해 선한 일을 하다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은혜와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시각에서 보면 부당한 고난을 참으라는 말은 악과 야합하라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고난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그가 왜 종들에게 불순종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는 지에 대해 말하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2:21-23,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베드로는 본문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신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생각하여 참고 견디어 내어 그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며 구원을 이루어가도록 하기 위함이란 것입니다(4:1, 3:12-14). 그러면서 불의한 고난을 견디신 그리스도의 본보기를 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오직 찬양과 감사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분을 거절했고 마구 때리고 죽였습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베드로는 초기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랬듯이. 이사야의 말씀으로 유명한 53장을 인용합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전 세계적 구원 계획을 이행하도록 부름 받은(42:1-9, 49:1-7, 51:4-9) 고귀한 인물인 그 , 부당한 취급을 받고 모욕을 당했지만 그대로 갚지 않고, 고난을 당했지만 자신을 괴롭힌 이들에게 저주로 되갚지 않음으로써 그 계획을 이행하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생활했고 그의 고난과 죽음, 부활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였으므로 나름대로 잘 설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대신 그는 구약의 성경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예수님은 구약에 미리 예언된 메시아이심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사야서 53:7을 인용함으로써 고난 받으시는 종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2:24-25,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본문은 이사야서 53:12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고난의 본보기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지 인간에게 감화를 주는 모범적인 죽음이 아니라 구약의 희생양처럼 죄를 알지도 못하시면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자신을 희생제물로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바치신 속죄적 죽음이라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희생제물이 되심으로써 죄인에 대해서는 제물을 대신하셨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공의를 만족시키셨다는 것입니다(53:12, 3:13). 또한 베드로는 이사야 53:4을 인용해 그분은 몸소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자기 몸에 지셔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길 잃은 양처럼 제멋대로 헤매고 있었지만 그분이 입으신 상처 덕분에 우리가 치유되었다는 것입니다(53:5-6), 이는 메시아 예수께서 그분의 백성이 받아야 할 벌을 직접 감당하셨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신약 전체에서 가장 명쾌한 선언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시며 그 이후로 세상의 참 주님이신 그분만이 다른 모든 이를 대표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만이 완전하고 적절하게 그들을 대신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세상의 다른 모든 일의 중심이었고 또 여전히 중심이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든 부당한 고난은 그 아들의 고난을 따라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예수님을 따르면서 당하고 있는 고난은 무엇인지를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