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5. 11:17ㆍ요한복음강해
지금까지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변호하는 말씀을 해오셨지만 이제부터는 오히려 그들을 향해 공격하는 태도를 취하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대하는 상반된 두 가지 태도를 부각시킵니다. 예수님은 지금 5장에서 일어났던 일, 즉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에서 병자를 치료하고 그 남자에게 침상을 들고 가라고 해서 안식일을 어겼다고 비난당했던 때를 언급하십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전체에서 계속 반복되는 비난입니다.
7: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그들은 모세와 그가 전해 준 율법을 자랑했지만 오히려 율법을 범함으로써 그들의 불의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7:1), 시도 자체가 살인이며 여섯째 계명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힐책에 유대인들은 ”귀신이 들렸다“고 말하면서 그런 사실을 한사코 부인합니다(20절).
7:21-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 도다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사건에 대해 핵심을 부각하기 위해 할례를 본보기로 이야기하십니다. 그리고 그 의식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알고 있다고 설명하십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 사내아이는 태어난 후 팔일이 되면 그날이 안식일이어도 할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내아이의 몸의 작은 일부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기 위해, 안식일을 어기는 것처럼 보이는 일을 그날에 행하고 있다면, 그렀다면 안식일에 어떤 사람의 몸 전체를 온전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율법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즉 율법의 목적이 사람들이 하는 일을 막는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바라시는 행동과 인품을 갖추게 하는 것이냐?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존엄이나 희망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 존엄과 희망을 주는 일이 어떻게 하나님의 목적과 그분의 선한 율법에 위배가 되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는 예수님이 동시대인들에게 자주 하셨던 책망이 있습니다. 곧 그들이 특정 율법을 이용해서, 실제로는 다른 율법을 어기면서 자기들이 정말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우쭐대고 있다는 책망인 것입니다. 겉으로는 안식일 법을 고수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을 죽일 궁리를 하고 있다고 그들을 추궁하심으로써, 이 책망은 한층 더 무게감이 있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반응은 서로 엇갈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귀신이 들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일 수 있는지, 뿐만 아니라 당국에서 이미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했기에 이런 식으로 대놓고 가르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인지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25-26절).
7: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구약성경에서는 메시아가 하늘 구름을 타고 홀연히 임할 것이므로(단 7:13, 말 3:1) 어디에서 오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갈릴리 지방 나사렛 출신이라는 것과 그의 가족관계까지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6:42).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7:28-29,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예수님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그들이 알고 있는 것에 동의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갈릴리 출신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지만 너희는 내가 진짜로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른다”라고, 즉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시지 않고 질문을 뒤집으십니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진짜 무지한 대상은 예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당연히 자기들 눈앞에 있는 예수님을 참 하나님과 연결 짓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똑같은 도전의 말씀입니다. 기독교의 메시지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세상은 무엇이고, 또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새로이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어떤 것을 추구하고 계시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율법의 행위가 아닌 율법의 정신을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중 하나가 우리들에게 율법의 정신을 가르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율법의 행위와 율법의 정신에 대해서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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