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29. 16:36ㆍ창세기강해
오늘 본문은 아담부터 노아까지의 족보를 다루고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역사 안에서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보여 주는 내용입니다. 본문의 족보는 아담 자손 전체를 기록한 것이 아니며 단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3:15)을 나게 하시기 위해 선택하신 셋 계열의 후손들을 대략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본문의 족보는 아담 한 가정의 역사 전체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아담에서부터 노아에 이르기까지의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전개 과정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이스라엘이 나라도 없어지고 강대국의 식민지 신세가 되어 초라해졌을 때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완성된 책입니다. 창세기 곳곳에 있는 족보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오늘날 우리의 뿌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아담에까지 이른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를 통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작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처음 두셨던 뜻과 의도를 다시 돌아보면서, 하나님과 끊어진 집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고 약속을 따라 살아가는 자신들을 회복하도록 촉구하는 것입니다.
5:1-3,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본문에서 말하는 ‘계보’의 단어인 ‘톨레도트’는 모든 사람의 족보를 다 기록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의 업적을 다 기록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의미 있는 내용들만을 선별하여 기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의 ‘계보’ 역시 인류의 시발점에 있는 아담 자손의 계보를 밝힘으로써 하나님이 앞으로 그들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시고 또 어떤 자손들을 통하여 자신의 구속사를 이끌어 나가실 것인가를 보여 주시려는 의도가 담긴 것입니다. ‘형상’이란 말은 ‘누군가를 원본으로 삼아 찍어냈다’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모습을 닮게 창조되었지만 반면 아담의 자손들은 아담의 모습을 닮게 태어났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닮았다’는 것은 외모가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인격이 닮았다는 것입니다. 즉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인격과 닮은 인격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고 아담의 자손들은 아담의 인격과 닮은 인격을 갖고 태어났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과 ‘아담의 형상’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선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이 범죄하기 이전의 완전했던 인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면 ‘아담의 형상’이란 죄에 의해 파괴되고 변형된 인간의 형상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의 형상’이란 범죄로 인하여 타락한 죄인의 모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기초로 바울은 로마서 3장에서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4-32절을 보면 아담 자손의 계보를 소개하면서 ‘죽었더라’는 말을 8차례나 거듭하여 반복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은 930세를 살았고 므두셀라는 969세로 성경의 인물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지만 그도 죽었습니다. 실로 죽음은 그 시간의 길고 짧음이 있지만 누구에게나 다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바울은 로마서 6:23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인간의 범죄 한 결과로 인간들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다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날마다 죽음을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구약의 선지자 아모스는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4:12)고 했으며, 신약에서도 ‘사람은 죽은 후에 누구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 행한 바대로 보응받는다’라고’ 요한계시록 20:11-15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아담이 930세를 장수하고 죽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와 선악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2:17).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범죄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는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인류 구속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그들에 대한 즉각적인 심판을 잠시 유보하시고 약속의 씨를 낳을 후손을 낳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이르러 아담은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9)는 말씀대로 죽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진실되어 반드시 성취된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사 55:11, 시 119:160).
21-24절에서는 에녹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는 본장의 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죽었다는 언급이 없는 인물입니다. 24절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동행”의 원어적 뜻은 ‘성관계를 갖다’(욥 34:8, 잠 13:20)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원리를 따라 마치 한 몸을 이룬 부부처럼 하나님과 매우 친밀하게 교제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화해와 인격적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에는 죽음으로부터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예표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골 1:20). 이것은 본장의 족보를 보면 에녹의 승천 전에 죽은 사람은 오직 범죄의 직접적 당사자인 아담 한 사람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범죄가 인간을 사망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과 동행하면 그와 인격적 교제를 회복할 때 영생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회복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초기 그리스도들은 자신이 죄인들을 위해 친히 화목제물로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써 사함을 받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행 3:19). 구약은 옛 약속이고 신약은 새로운 약속이지만,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신, 구약에서 말하는 가장 중심적인 언약인 것 같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면 영생이 있는 ‘복’을 얻는다는 것입니다(요 3:36, 5:24). 이 시간 나는 과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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