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출애굽기강해]#94. 32:7-14. "목이 뻣뻣한 백성"

2022. 11. 9. 15:05출애굽기강해

 

성경을 잘 해석을 하려고 하면 이 성경을 읽은 최초의 독자가 누군가를 알면 본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말씀을 읽은 최초의 독자는 누군가? 모세오경은 바벨론 포로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배웠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전쟁을 신들의 전쟁이라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야훼 신이 바벨론 신인 말둑 신에게 졌다고 생각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왕족과 귀족과 종교지도자들과 사회지도층들과 백성들은 3차에 걸쳐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성의 규모와 화려함에 압도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말둑 신전의 규모와 화려함은 그들이 섬겼던 예루살렘 성전과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둑 신에게 경배하는 지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오경을 만든 것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것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은 그 당시 독자들의 마음을 가지고 읽으면 이해하기가 좋을 것입니다.

 3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리켜 '내 백성'이라고 하셨으나, 여기서는 '네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그것은 이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여 하나님 백성의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32:8-9,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예배하며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자기들을 위하여'이 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말을 곧 하나님을 기복적으로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신앙의 대상이지 종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이 곧은' 이 말은 원래 농부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소나 말에게 쓰이던 표현으로 성경에서 고집이 세고 악한 상태를 가리키는 관용어로 사용된다고 합니다(신 9:6, 왕하 17:14).

 32: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본문은 우리 기독교에서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만약에 모세의 자손으로 새롭게 구성되었을 경우 이것은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이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믿음의 후손'(롬 4:3)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을 지켜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는 '율법의 후손'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32: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하나님의 제안에 대해 모세는 거부의 표시를 분명히 합니다, 대신 백성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립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소돔이 멸망하기 직전에 그들을 위해 중보 역할을 한 것과 유사합니다. 본절은 모세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세운 언약에 근거하여 백성들이 범죄 하였지만 여전히 '주의 백성'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32:13-14,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켜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을 하면 결과적으로 하나님 스스로 이들 조상에게 한 약속을 깨뜨리는 셈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신인 말둑 신에게 경배하지 말며 오직 여호와만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이스라엘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신다'는 것을 하나님의 성품을 근거로 해서 간절하고 끈질기게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시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말둑 신을 경배했을까? 하나님의 임재함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상태는 어떠한가? 지금의 말둑 신은 누구인가? 아마도 세상 권세가 아니겠는가? 지금 현재 코로나 사태로 온 지구촌은 어려운 상태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 그런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2,000년 교회사를 보면 흥망성쇠가 있었지만 변함없는 것은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율법의 모세의 자손이 아닌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의 구원에 대한 지침서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의 구원의 목적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과 하나님의 관계 형성인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바르게 맺는 것입니다. 누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노력으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의 역사함으로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할 것은 은과 금이 아니며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성령이 충만한 우리들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우리들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처럼 “자기를 위하여”(8절)처럼 살아가지 말아야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삶은 하나님이 우리를 중심으로 돌기를 원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을 사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로 우리들의 기도제목을 보면 내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도는 삶을 사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내 중심으로 사시기를 원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의 기도제목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