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출애굽기강해]#97. 33:1-6. "이스라엘 백성들의 참회"

2022. 11. 30. 11:05출애굽기강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없는 틈을 타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심한 상처를 주었던 것입니다. 금송아지 우상은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본마음이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새롭게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풍요로운 생활이었고, 그렇게 살도록 해준다면 여호와가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복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다음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 이상 함께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함께 가시지 않고 오직 그들이 원하는 것만 가지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올라가시지 않는 대신 다른 천사를 보내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33:1, "여호와께서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네가 인도하여 낸 백성‘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애굽 사건을 자신이 직접 인도하시기보다는 마치 인간 지도자 모세가 한 것처럼 말함으로써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객관적이고 낯선 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3:2,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본절은 가나안 정복이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에 의해 됨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도 세상과 영적 전쟁을 하나 우리들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써 싸울 뿐입니다(골 1:29).

 33:3,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하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에게 약속하신 복은 주지만 그들과의 관계는 이것으로 끝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 모두에게 큰 고역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하나님보다도 종교가 주는 자기만족을 더 추구했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런 종교적인 만족을 계속 부인하셨고 깨뜨리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목적이 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종교 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를 통하여 자기 성찰을 얻을 수도 있고, 종교를 통하여 자기 성취감을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심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 때,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것이 목적이 아닐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33:4,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이는 금송아지를 숭배한 죄에 대하여 참회하고 있음을 외적으로 나타낸 행위입니다. 한편 백성들은 금송아지 제작을 위해 금 고리를 내놓았는데 그렇게 하고도 또 다른 장신구가 있었음을 볼 때 출애굽시 그들이 애굽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양의 패물을 받아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33:5-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한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는 진멸하리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 산에서부터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내니라" 장신구는 당시 고대 근동에서 우상 숭배를 위한 일종의 신상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장신구에는 각종 형태의 신상들이 아로새겨져 있었습니다. 야곱이 옛 생활을 청산하고 벧엘로 올라갈 때 그와 함께한 사람들의 귀걸이 같은 장신구를 이방 신상과 함께 파묻은 까닭도 그 때문입니다(창 35:1-4). 출애굽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장신구를 애굽 사람들로부터 받았는데, 그것들을 몸에 지니고 있음으로 그들은 결국에는 금송아지를 만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가장 거슬리는 것은 그 장신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한다면 그 장신구부터 없애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부터 없애고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는 이런 장신구가 없는가? 설사 그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나를 위하여 그것들이 언제든지 금송아지로 돌변할 수 있는 것들은 없는가? 지금은 나를 유익하게 하고 편하게 하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 나를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악세사리는 없는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장식품을 제거한 것은 원래 자신들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필요했던 노예 시절의 가난한 심정으로 되돌아간 것이었습니다. 또한 장신구를 제거한 것은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겠다는 결단의 표시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신구는 없는가?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부흥의 시대가 아니고 우리들에게 어떤 장신구가 있는가를 알아서 그 장신구를 빼버리고 불살라버릴 때인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다시 부흥의 시기가 올 것입니다.

 이 시간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장신구는 무엇인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