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고린도전서강해]#19. 7:1-7. "결혼 생활"

2021. 11. 17. 17:10고린도전서강해

 

 

 바울의 '선교 여행'은 사람들에게 예수를 알려 그들 내면의 변화를 일으키고 궁극의 소망을 새로이 일깨우는 것도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을 목표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선교 여행은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새로운 종류의 나라를 세우는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늘 세우려 했던 그 나라, 바울은 바로 이 나라를 힘주어 선포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교회는 개인이나 화려한 웅변술을 따라 나뉘면 안 된다. 하늘이 두 쪽 나도, 교회는 노골적 음행을 용인하고. 서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특히 성 문제에서 도덕적 규제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당부했습니다. 7장부터는 편지의 어조가 바뀝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에게 편지를 보내서. 자신들을 궁지에 빠뜨리고 교회에 어려움을 일으키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하여, 그것들에 대해. 바울은 몇 가지 확고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그런데 그 원리들은 대부분 성경적 이해와 신학적 사고, 목회 경험에서 우러나온, 기독교적인 현명한 조언에 가깝습니다.
 7: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교회 안에는 도덕적 규제를 완전히 벗어던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6장). 엄격한 도덕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당시 유명한 몇몇 철학자의 견해를 따라. 사람들에게 금욕 하거나. 이미 결혼했다면 부부간 성관계를 피하라고 권장했습니다. 일부 교사들은 이것이 개인 경건과 영적 성숙의 새로운 차원에 이르는 길이라는 입장을 강하게 고수했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그 당시 철학자들이나 일부 교사들이 주장하는 것을 반대는 하지 않지만 이것을 적용하는 방식에는 반대를 합니다. 
 7: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바울은 특히 고린도 같은 국제도시에서는 육체의 유혹이 사방에서 엄습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결혼을 하되 성관계를 피하는 것은 고생을 사서 하는 일입니다. 성적 친밀감이 수반되지 않는 결혼 생활은, 너무 쉽게 다른 분출구로 이끌이도록 갈망을 자극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모든 사람이 결혼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두다'(have)란 '성관계를 맺다'를 의미하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그는 "음행 때문에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말은 결혼한 사람들이 부부관계를 맺지 않을 경우 다른 데서 비행을 저지르도록 유혹받을 위험이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인 남성이 매춘부를 찾아가는 6장의 문제가, 자신들의 영적 삶을 더욱 풍성하게 고양하기 위해 성관계를 피하기로 마음먹은 그리스도인 여성들 때문에 일어났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7:3-4,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지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면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본문은 남편과 아내의 평등을 인상 깊게 선언하면서 바울이 품고 있던 생각을 명확히 보여 줍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바울이 남성 우월주의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본문은 바울이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그는 먼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를 언급하고 난 뒤에,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를 언급합니다. 그런 다음, 아내의 몸을 부릴 권위가 남편에게 있기 때문에 아내가 자기 몸을 부릴 수 없듯이, 남편 역시 아내에게 권위가 있기 때문에 자기 몸을 부릴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대담한 선언이었고, 지금도 도전적인 말씀입니다. 특히 요즘처럼 맞벌이하는 부부들에게 이 말씀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핵심 지침이 되는 말씀입니다. 가까운 사이 일 수록 존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부부 사이인 것 같습니다. 부부는 촌수가 없을 만큼 가까운 사이인 반면 돌아서면 완전히 남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존중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을 받아들이면 가장 회복되는 것이 가정이다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7: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 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부부가 기도 생활에 더 여유롭고 자유로운 시간을 쏟기 위해 잠시 성적 접촉을 피해야 할 때가 있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금욕 자체가 그들을 더 높은 영적 수준으로 끌어 준다고 시사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성적 접촉을 잠시 중단하리라 합의하면 두 사람에게 묵상과 기도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뿐이다는 것입니다. 금욕이 유익이 있기는 하지만, 장기간 하면 안되는 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본성 중에서 가장 강한 '성욕'을 가지고 사탄의 공격 기회를 주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7:6-7,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이 아니니라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바울은 본문 말씀이 명령이 아니라 조언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독신임을 알고 있지만 그가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자 아내가 그를 떠났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는 성적 충동을 제어할 수만 있다면, 독신이 좋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기혼이든 독신이든, 하나님이 사람들을 부르신대로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이어 갈 수 있게 하신다고 여깁니다. 바울의 이 말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게 한 조언인데 바울의 이 조언은 지금 현재에도 적용이 될 만큼 중요한 지침서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거듭난다고 해도 우리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들의 본성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그 본성과 성령이 끊임없이 부딪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입니다. 바울은 우리들이 영적 전쟁을 어떻게 하는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를 하려면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기도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행동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먼저 우리가 행동을 하면 성령님이 우리들에게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내가 상대방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사랑한다'라고 일단 말부터 해보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성령님께 맡겨보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먼저 상대방에게 다가가는가~ 아니면 상대방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어서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