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고린도전서강해]#23. 7:32-40. "나누어진 충성"

2021. 11. 23. 21:09고린도전서강해

 

 그 당시 로마 당국은 정복지의 평화를 지키고 사회를 안정시키기 원했습니다. 또한 그 지역의 유지들은 로마 당국에 잘 보이기 위하여 로마 당국과 같은 목표를 이루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평화롭게 살면서도 그들의 온전함을 지키고 싶어 했던 유대인 공동체들은, 로마 제국이 섬기는 '신들을'예배하는 의무를 자신들만 특별히 면제받은 사실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이렇게 안정을 이루고자 했던 바람은, 이스라엘의 성경이 약속한 것이 예수와 관련된 메시아 사건을 통해 완성되었다고 선포하는 바울의 메시지에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예수를 주(LORD)로 인정을 했지 로마 황제를 주로 인정하지 않았고 이방인 또한 구원의 대상이라는 것에서 유대 공동체에 도전을 받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메시지는 다른 시각, 새로운 사회적 실체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유대인이 비유대인과 형제로 살아갈 것을 거부하면서 늘 기켜 왔던 금기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바울의 메시지가 도전이 되는 것은 모든 메시아 백성이 동등하게 환대받으며 모든 이가 이제 막 닺을 올린 '하나님 나라'의 '상속인'임을 확실히 보장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가 동트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초대 교회의 시대적 상황을 알고 본문에 접근하면 이해하기가 좋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결혼을 반대한다는 근거 없는 평판을 갖게 해준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2-5절에서 결혼한 부부에게 결혼생활에서 조언한 말씀이 있는데 이런 평판을 받는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일반적이 상황에서의 결혼 생활이 아니라 그 시대의 급박한 상황에서 기인한 결혼문제에 대해서 고린도 교회에 바울의 견해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주님과 배우자들 같이 섬길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9:5)처럼 그는 대다수 사도들을 포함하여 결혼한 여러 그리스도인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두 가지 소명이 서로 배타적이라고 여긴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기근이 계속되는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하나님도 섬기고 신혼 생활을 잘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바울은 조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5:22-33에서 말한바와 같이 아내를 향한 남편의 헌신적인 사랑과 남편을 향한 아내의 사랑이 그 자체로 하나님을 크게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형상을 영화롭게 반영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적으로 곤핍한 시기에는 두 가지 일 즉 주님의 일과 신혼 생활을 다 잘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만약에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바울은 주님을 선택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융통성 없는 규칙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절대적 정답이나 오답이 없는 예민한 사인에 대해, 명확하고 현명하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답게 생각하도록 가르치려 얘 쓰고 있습니다.
 본문의 첫머리에서 바울은 자신의 바램을 이야기합니다. 곧 그리스도인들은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32-33). 바울은 빌립보서 4:6에서처럼,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주님을 신뢰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모든 일에 주님을 신뢰하는'것은, 불필요한 염려의 짐을 자신에게, 또한 사랑의 끈으로 매여 있는 사람들에게 지우지 않도록 확실히 조치하는 것을 포함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기도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위험하게 운전하면서 안전 운행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기근 때문에 고난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결혼을 해도 잘 될 것이다는 마음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7: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두 가지를 다 잘할 수가 없다면 주님이 우선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결혼을 하던 하지 않던 주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7:36,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한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바울은 자신이 결혼 자체를 반대하지 않음을 이 본문 전체에서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남자에게 말하는 것은 약혼한 남자에게 결혼식을 준비하는 책임이 있었던 그 당시 사회적 상황이 반영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요인들로 삶이 힘겨워질 때, 그 어려움에 직면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과부들에게 짧은 조언을 하며 논의를 마무리합니다.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며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39-40). 이 말씀 역시 명령이 아닙니다. 과부는 오직 '주 안에서만' 즉, 다른 그리스도인과 마음대로 재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회적 압박에 의해서 분별없이 재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남편을 잃은 과부들은 서둘러 재혼을 해야 하는 사회적 압박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들이 뛰어난 영적 지혜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고린도 일부 교인들에게 바울은 온유하고 조심스럽게 "나도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자신의 조언이 모든 상황에 강제적인 것은 아니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여햐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 처럼 바울은 결코 결혼을 반대하는 자가 아닙니다 다만 그 시대의 상황이 결혼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이에 조언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각자가 살고 있는 시대의 상황에 맞게끔 슬기롭고 지혜롭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핵심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코로나 사태로 어려운 시대에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일까? 한 번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