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누가복음강해]#28. 8:40-56. "야이로의 딸과 혈루증 여자"

2021. 11. 5. 07:39누가복음강해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과 열두 해 동안 혈류병을 앓고 있는 여인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마음은 절박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야이로의 마음으로 그리고 혈류병을 앓고 있는 여인들의 마음으로 본문을 읽으면 좋을 것입니다. 
 8:40,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이들이 예수님을 기다렸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8:41-42, "이에 회당장 야이로라는 사람이 와서 에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회당장은 이 당시 사회에서 상류층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는 왜 굳이 회당장이라는 사람의 직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을까? 열두 살이라는 나이는 그 당시 유대사회에서 결혼을 할 수 있는 나이를 뜻합니다. 이런 외동딸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야이로의 애타는 심정이 체면을 불구하고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게 만든 것입니다. 회당장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회당장이 예수님의 발아래에 엎드려 자기 딸을 살려달라고 하니 많은 사람들은 궁금했을 것입니다. 
 8:43,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여인이 병을 앓아온 햇수와 야이로의 딸이 살아온 햇수가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열 두해 동안 두 사람의 삶은 정반대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야이로의 딸은 외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상류층의 집안이었고 그 딸을 위하여 자기의 체면을 버리고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린 야이로를 볼 때에 엄청나게 귀여움을 받으면서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며 반대로 열두 해 동안 혈류병을 앓은 여인은 죄인취급을 받으며 격리된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너무나 대조된 삶은 살아온 두 사람입니다.  
 8: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그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거룩한 사람의 옷을 만지면 유익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혈우병은 나병과 같이 무리와 격리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만약에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여인은 군중들에게 곤욕을 치를 것입니다.  
 8: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이 표현은 예수의 몸에 있던 일정량의 능력이 빠져나가 소모되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옷에 의도적으로 손을 댄 사람에게 치유의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8:47-48,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려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워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병 고침을 받은 여인은 그냥 집에 가면 되는데 왜 구태여 예수님 앞에서 고백을 했을까? 그리고 예수님은 그 여인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 믿음이 좋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하는 믿음은 무엇일까? 혈류병을 앓고 있는 여인은 절박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절박한 상태에서 인간은 누구나가 다른 존재에게 의존을 하게 됩니다. 믿음은 절박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의 절박한 행위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다렸으나(40절)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에게 손을 대고 엎드려 간구한 사람이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을 합니다. 그 믿음의 결과로 여인은 병 고침을 받았으며 공동체로 복귀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구원은 영육 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이처럼 죽어서 가는 천당이 아니라 살아서 하나님의 다스림과 은혜를 받는 것이고 죽어서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8:49-50,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야이로는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이 치유를 받는 모습을 볼 때까지는 소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딸이 죽었다는 전갈을 받았을 때에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에 예수님은 또다시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십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은 오늘날 우리가 전도를 할 때 많이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18세기에 '산데마니아'라는 이단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신조는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면 이들은 이단이 아닌데 왜 이단으로 취급을 받았을까?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야이로의 심정에 들어가 보면 알 것입니다. 자기 딸이 이미 죽었는데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면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상태에서 믿음을 강요한 것입니다. 이는 누가복음이 기록될 당시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이 당시 초대교회에서는 예수를 주로 시인을 하면 로마 황제를 부인하는 것이 되므로 반역죄로 처단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믿음을 너무 가볍게 말을 하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행위가 동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8:56,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처럼 함구령을 내리시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기대하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믿음은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구원은 오랫동안 단절된 생활을 했던 한 여인이 병고침을 받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회복되는 것이고 또한 죽었던 여자 아이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를 만나서 내 인생이 꽃피는 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는 야이로와 열두 해 동안 혈류증을 앓았던 여인의 믿음이 필요하고 그 믿음에서 나오는 행위가 동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묵상해봅시다. 나의 믿음에는 절박함이 묻어 있는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