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19. 16:26ㆍ갈라디아서강해
오늘 본문 말씀은 갈라디아서의 중심 사상인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3~4장)을 마무리 지으면서 율법과 약속(복음), 행위와 믿음의 차이를 아브라함의 두 아내인 사라와 하갈(창 16장, 21장)의 비유로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아마도 바울의 반대자들은 유대교의 율법이 자신들 편이라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일부러 갈라디아인들에게 이야기 전체를 들려주지 않았다고 그들은 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인들이 아브라함의 합법적 자녀, 참 하나님의 백성에 소속되고자 한다면, 할례 받는 것을 포함하여 율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율법서인 모세오경 중 창세기에서 바울의 논증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이야기 하나를 전해줍니다.
4:21-22,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 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율법주의자들과 그들의 동조자들에게 율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브라함의 두 아들이야기를 예를 들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는 창세기 16장과 21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그 당시 관습에 따라 자기 여종을 첩으로 취하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면 여종이 낳은 아이들을 사라의 친자녀로 삼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동의했던 것입니다.
4:23-25,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노릇하고”하갈은 임신한 후 아직 아기가 없는 사라보다 자신이 낫다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이 당시 여성이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은 수치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라는 하갈을 가혹하게 대했습니다. 이에 하갈은 도망쳤고 후회하며 돌아와서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이 사라에게 구체적 약속을 주시고(창 17:15-21) 사라도 임신해서 이삭을 낳았습니다. 얼마 뒤 사라는 친아들 이삭 때문에 이스마엘을 시기하여, 이스마엘과 그의 어머니 하갈을 내쫓았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라비아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삭은 야곱과 에서의 아버지였고, 그러므로 이스라엘 전체의 조상인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을 통해 자신의 논증을 말하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가족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이삭이고 어느 쪽이 이스마엘인가? 다시 말하면 어느 쪽이 종의 가족이고, 어느 쪽이 자유인의 가족인가? 하는 것입니다. 핵심은 진짜 가족, 즉 이삭의 가족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만들어진 가족이라는 점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데도 하갈을 통해 자녀를 낳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마엘은 ‘육신을 따라’ 태어났습니다. 반면에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앞에서 시내산에서 주어진 모세의 율법이 모세의 시대와 메시아의 도래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종의 상태에 두는 역할을 했음을 설명했습니다(3:23-43). 따라서 율법은 그 자체만으로는 이삭의 자녀들이 아니라 이스마엘의 자녀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하갈은 시내산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갈라디아의 반대자들이 호소하는 율법을 상징하는 그곳입니다. 반대자들은 예루살렘에서 권위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은 ‘현재의 예루살렘’입니다. 그것은 모든 성도들의 참된 본향이 하늘의 예루살렘, ‘위에 있는 예루살렘’과 대립되는 곳입니다. 이 점을 입증하기 위해 바울은 이사야 54장에서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4:26-27,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본문은 이사야서 54:1을 인용하고 있는데, 황폐한 예루살렘이 이전보다 더 번영하게 된다는 예언의 일부입니다. 바울은 하갈에 대해 설명하고 난 후 자유로운 여자인 사라에 대한 설명으로 옮겨갑니다. 사라는 모든 은혜의 자녀들의 어머니인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하갈과 동일시되는 “지금의 예루살렘”(25절) 즉 율법 아래에서 율법에 종노릇 하는 땅에 있는 예루살렘과 대조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앞으로 올 예루살렘” 또는 “새 예루살렘”이라고 하지 않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한 것은 하늘 위에 준비되어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개념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고 신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두 가지 주장을 합니다.
4:28-29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첫째, ‘육신의’ 정체성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이삭에게 속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현재의 예루살렘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스마엘에게 속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스마엘의 백성들이 이삭의 백성들을 핍박하겠지만, 결국에는 그들이 쫓겨나게 될 것이고 약속을 상속받을 이들은 이스마엘의 가족이 아니라 이삭이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4:30-31,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바울은 율법을 준행하는 것이 상속의 근거가 되지 못함을 일깨워줌과 동시에 유대주의자들과 그들의 거짓된 교리를 받아들인 자를 내쫓으라고 강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과 갈라디아 교인들은 쫓겨난 유업의 분깃을 받지 못한 여종 즉 율법과 죄의 종이 아니라 자유로운 여자 즉 참 자유와 생명을 누리는 약속의 자녀임을 확신시키고 있는 것입니다(롬 8:17).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한 바울의 핵심은 ‘우리’(바울 자신, 그리고 그가 전한 복음을 믿는 이들)가 불청객이나 이류 시민이나 아브라함의 서출 가족으로 분류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 이들은 이삭처럼 약속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유로운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자유로운 백성답게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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