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갈라디아서강해]#2. 1:6-10. "다른 복음"

2023. 12. 21. 10:44갈라디아서강해

 

바울이 항상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에는 먼저 문안을 하고 그다음에 그들을 위하여 자신이 기도하고 있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상례입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자기가 어떤 사람을 위하여 해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그들을 기억하면서 기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놀랍게도 이 갈라디아서에서는 그들을 위한 기도 대신에 그들을 책망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은 바울로 하여금 그런 책망을 듣게 되었을까?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본문에서 “속히 떠난”다는 것은 바울의 복음을 듣고 회개를 하고 받아들였지만 거짓 교사의 유혹을 받고 빨리 떠났거나 아니면 바울이 가고 난 후 곧바로 떠났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이들에게 전한 복음은 무엇일까? 바울이 전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복음의 시작입니다. 바울에 따르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이 이제 새로운 가족을 세우고 계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가족, 즉 아무런 장벽도 없고, 인종차별도 없으며, 유대인의 식탁과 이방인의 식탁을 따로 두는 일이 없는 가족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그분이 온 세상의 주님이 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에게는 하나의 가족밖에 존재할 수 없다고 바울은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가족은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유대인이 되지 않고도 예수님 덕분에 이 가족에 합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온 세상의 ‘아버지’로 알려지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좋은 소식을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전했던 것입니다. 그런 후에 다른 곳으로 떠났는데 그 후에 바울은 불길한 소식을 접한 것입니다. 자신이 떠난 후에 갈라디아 사람들은 자신의 전한 복음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1:7-9,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그러면 본문에서 나오는 “어떤 사람들이”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교란스럽게 전한 복음은 무엇일까? 그 복음이 무엇이기에 바울이 그렇게나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이들은 일단 유대교 전도자들은 아닐 것입니다. 이들은 바울이 이류 사도에 불과하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사도’란 말은 ‘보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에 파송된 최초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 초기 기독교 시대에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반대자들은 바울의 사도직이나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예수님께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초기의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반면 자신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베드로나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 같은 ‘최초의’ 사도들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주장한 복음은 무엇일까? 이들은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가 한 가족에 속한 것처럼 생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방인 신자들이 진짜 핵심 그룹에 속하고자 한다면,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가족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면, 마땅히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할례를 받아야 할 것이며,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하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해 주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전한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복음은 유대교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닌 이상한 복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교에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십자가에 처형을 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복음을 예수님이 화목 제물로 죽으심으로 은혜로 받는 것인데, 유대교처럼 율법과 행위로 지켜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이상하고 괴물 같은 복음을 받아들인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사람을 좋게 한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고 그들을 만족시킨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 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 또한 교인들이 듣기 좋은 설교를 해야 하고 기도 또한 성도들이 좋아하는 생사화복에 관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본문에서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좋게”하는 것이라고, 즉 성도들이 모든 면에서 마치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듯이 하나님을 중심을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에게 복음은 구원의 체계도 종교인이 되는 새로운 길도 아닙니다. 복음이란 십자가에 달리신 메시아 예수가 온 세상의 주로 높임 받았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전 세계적인 한 가족의 실재 속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복음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법 모조품을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조품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이, 즉 예수님을 기초로 하는 한 가족을 세우려는 목적이 부분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부분적으로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바울 이후의 세상은 끊임없는 전쟁의 연속이었으니까 현재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이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진정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나의 사명을 다 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