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29. 11:11ㆍ갈라디아서강해
교회에서 재정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하면 많이 곤란해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에서 말한 것을 오늘 본문에서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돈이라는 말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돈에 대해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돈은 분명 우리 시대만큼이나 바울의 시대에서도 민감한 주제였던 것입니다. 앞 단락과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도 여러 가지 폭넓은 적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핵심 내용은 교회의 사역과 생활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는 아주 구체적인 것입니다. 바울은 현대 교회가 대부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아주 분명한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좋은 것을 모두”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바울이 본문에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해 구현된 예수님의 복음 전체를 뜻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자연스러운 의미는 금전과 관련이 있지만, 선물도 적절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교회가 사역에 대한 적절한 사례 지급을 종종 경시하여, 사역 자체가 빈약해지거나, 교회를 든든히 세울 수 있고 세워야 하는 가르침이 빈약해지고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입니다.
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만약 성도들이 영의 밭에 씨를 뿌리면, 즉 교회 사역, 특히 가르침과 복음 선포를 탄탄하게 실질적으로 후원한다면, 적당한 때에 추수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육체의 밭에 씨를 뿌리면, 즉 일상생활의 수많은 쾌락에 자원을 허비해 버리면, 그들이 얻을 결과는 부패와 쇠퇴밖에 없을 것입니다. 고급 주택도 무너집니다. 화려한 옷도 낡습니다. 그러나 말씀 사역은 사람과 공동체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누리는 생명은 영광스럽게도 죽음 자체를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돈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은 돈이 하나님이 주신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돈은 오직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돈은 위탁받은 것입니다. 지혜롭게 사용하면, 즉 바울이 표현한 대로 “씨를 뿌리면” 돈은 선한 것을 결실로 낼 것입니다. 이 말은 직접적으로 재정 투자(돈으로 돈을 버는 것)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어떤 경우에도 교회는 항상 이것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선한 일, 즉 개인과 공동체에 지속적 혜택을 주는 일에 관해 말하는 것입니다.
‘육체에 씨를 뿌리는 것’과 ‘영에 씨를 뿌리는 것’의 대조는 이 편지의 더 넓은 주제와 분명한 관련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의 다른 부분과 연관 지어 볼 때 ‘육체에 씨를 뿌리는 것’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혹은 그중 일부가 열심을 품었던 바로 그 일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즉 할례 받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에 내포된 명백한 의미는, 한 사람의 ‘육체’ 그리고 육체가 나타내는 정체성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 길을 간다면, 당신은 파멸로 향하는 길을 가는 것이라고 바울은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즉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쇠퇴와 죽음은 확실합니다. 소유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수확은 영에 씨를 뿌리는 데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즉 넓은 의미에서 영 안에서 살고, 기도하고 열매 맺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육체의 씨를 뿌리는 것은’ 5:19-21의 관점에서 보면 “육체의 일”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수준에 있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언제나 7절의 준엄한 경고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분을 업신여기도록 놓아두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께 겸손하지 않고 콧대를 높이는 사람들, 자기 멋대로 행동한 뒤에 무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마음대로 보복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말은 행동이 농사와 비슷한 효과가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당신이 보리를 심으면 보리가 자라나고 밀을 심으면 밀이 자라날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즉 ‘세상의 이치’이며 선한 창조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육체와 관련된 행동을 ‘씨 뿌리는’ 이들이 그에 부합하는 결과는 거둘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 마지막 결과는 죽음입니다. 그리고 영에 씨를 뿌리는 이들은 ‘영생’,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침입해 들어왔고 장차 완성될 새로운 시대의 생명을 거둘 것이라고 선언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재정적 면에서만 아니라 더 광범위한 도덕적 삶에서 인내하며 견디는 사람, 영의 삶을 살아가는 데 지치지 않는 사람, 그렇게 살려는 열정을 잃지 않는 사람은 참된 결실을 거둘 것입니다.
6:9-1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바울 시대의 이런 관용구는 시민 생활과 공동체 생활을 위한 재정 기부를 의미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특히 믿음을 지닌 가족들에게 그렇게 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초대 교회는 핍박 아래 놓여 있어 궁핍한 성도들이 많았기 때문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구제해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시간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돈을 어느 곳에 뿌리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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