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8. 12:12ㆍ갈라디아서강해
앞의 두 장에서 유대주의 거짓 교사들의 비난에 대해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고 메시지의 신적인 기원을 입증한 바울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외에 모세 율법을 더 지키도록 강요받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구원 얻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임을 강조하는 것이 오늘 본문 내용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할례를 받으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바울은 대체 누가 그들에게 그런 것을 전했다는 것인가? 그리고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두 번이나 ‘어리석다’ 혹은 ‘분별없다’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영으로 시작했으면서 어떻게 육체 가운데 계속 머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믿음으로 시작했으면서 어떻게 유대교의 율법, 토라의 행위로 이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를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어리석도다”라고 말한 것은 세상적인, 미련한, 생각이나 분별력이 없는 행동하는 것을 매우 직선적이고 도전적인 말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죄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복음과 율법,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지 못한 것에 대해 격분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마치 게시판이나 그림을 보는 것 같이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생생하게 전했는데도 불구하고 도대체 어느 누가 이상한 마법을 걸어 너희들을 마술에 걸리어 넘어지게 했느냐면서 나무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오직 믿음만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길임을 설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3: 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바울은 그들이 성령을 받은 방법에 대해 묻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듣고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로마서 10:14-17, 사도행전 10:7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와 부활에 관한 복음을 듣고 믿게 되었고 성령을 받은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그것을 듣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생기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말씀과 함께 일하시는 성령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 그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순전히 우리가 복음을 잘 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그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다만 시간의 싸움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듣는 순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대상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진정으로 기도하며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 성령님이 역사하신다는 생각을 하면 될 것입니다.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는냐”성령은 예수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이면 어디서나 강력하게 활동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1:5에서 말하듯이, 우선 갈라디아인들이 믿게 된 것은 바울이 복음을 선포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말씀이 전파될 때 말씀 자체가 살아 움직인다고(살전 2:13), 복음 자체가 능력을 지닌다고(롬 1:16) 말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는 주님이시다”라는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고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성령뿐이라고 선포했습니다(고전 12:3). 즉 바울의 말한 복음의 핵심은 복음의 말씀이 전파될 때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역사하여 믿음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바울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할례를 받는다면 중요한 것은 영이 아니라 육체라고 고백하는 셈이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육체란 포피이고, 하나님께 맞서 반역하는 인간 실존의 전 영역으로서의 ‘육체’인 것입니다.
3: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바울은 사도들과 교인들이 갈라디아 지방에서 받았던 핍박과 고난을 회고하고 있습니다(행 13:44-52, 14:2,5,19). 그런데 이제 와서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려고 은혜로부터 돌아선다면 그런 박해를 “헛되게”받은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들은 왜 그렇게 할례를 받으려고 하는 것일까? 율법은 눈에 보이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불안했던 것일까? 바로 심판인 것입니다. 그들은 심판에 너무 몰입을 한 것입니다. 심판에서 하나님에게 잘 보여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할례만 받지 않았을 뿐이지 옛날 유대인들이 밟고 있는 전철을 똑같이 답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심판이 무서운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성령의 역사함으로 인하여 구제와 봉사를 하는 것보다 죽어서 심판대에 오를 때를 대비해서 구제와 봉사를 하고자 하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내면의 세계일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에 벗어날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3: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믿음에서냐”본문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성령을 주시고 이적을 행하셨으며 지금도 똑같은 일을 계속 행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기적을 행하셨으며(행 14:3, 8~11), 이 초자연적인 역사는 그들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구원으로 인도하는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는 믿음과 이적은 나란히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이적과 기적은 믿음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나의 신앙생활에서 이적과 기적을 체험을 할 만큼 믿음이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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