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갈라디아서강해]#10. 3:10-14.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2024. 1. 10. 16:16갈라디아서강해

 

유대 민족, 즉 아브라함의 가족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표지로 규정되어 있어서 세상 어디를 가든 주변 이웃들과 구별되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켰고, 돼지고기 같은 특정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또한 그들은 남자아이들과 남성 회심자에게 할례를 했던 것입니다. 이는 율법, 즉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유대교 율법의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언약의 요구 사항이었습니다. 바울이 모세를 제쳐 놓고 곧장 아브라함에게 호소하는 것은 바로 유대인 이야기의 주요 부분, 유대 관습의 핵심, 유대교 신학의 핵심 요소를 무시하는 처사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것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획에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유대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모든 민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12장을 시작하는 구절들이 바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 전개되리라고 예상되는 길이라고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을 거부한 자가 받게 될 저주와 믿음으로 사는 자가 받게 될 축복에 대한 내용입니다.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인간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인 “탐심”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탐심에 대한 죄를 고백하고 속죄제를 치른다면 이스라엘의 염소나 양은 남아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저주 아래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가 아닌 율법을 구원의 수단으로 착각한 율법의 저주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롬 7:12),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할 때 율법은 저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가족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나머지 세상에 전달해야 했습니다. 그 가족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가 율법입니다. 그래서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저주는 내세에 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현재 하나님과의 교제를 무너뜨리고 이후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된 삶을 무너뜨리는 유죄의 근거가 된 것입니다. 그 저주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멀리 떠나 유배를 당할 것이라는 신명기의 저주를 바울은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저주는 바로 이방 민족에게 유린당하고 강제 추방되는 유배의 저주인 것이었습니다.

 3:11-12,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율법의 기본 원리는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 것이다”(레 18:5)입니다. 만일 인간이 율법을 하나도 어기지 않고 완벽하게 지켰다면 분명히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은 약속에 이르는 다른 직행로가 있다고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이 유린당하던 시절에 기록된 하박국서는 믿음이 생명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하박국 2:4). 반면에 레위기는 율법을 행하는 것이 율법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핵심이라고 계속 강조합니다. 그러나 율법 자체가 약속을 간직하고 있던 백성들을 전복시켰다면 하나님의 다음 계획이 무엇인지를 눈여겨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바울은 율법을 범하여 그 저주 아래 있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의 길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길은, 즉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방법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주신 은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써 모두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고 자신의 힘으로는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노예 상태에 있습니다(롬 3:23). 이런 인간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우리들이 받고 있는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율법의 저주는 죄인들로부터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 전가되었으며(벧전 3:18), 죄인들은 저주로부터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바울은 신명기 21:23절을 인용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메시아로서 이스라엘의 저주의 짐을 친히 지셨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저주로 인해 우리들이 속량을 받은 것은 하나님이 늘 계획하셨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에서 시작하여, 그의 가정과 그의 ‘씨’를 거쳐, 모든 민족에게 이른다는 것입니다. 또한 에레미아, 에스겔, 요엘을 비롯한 여러 선지자들에 따르면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마침내 언약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영을 부어 믿게 하시고, 이렇게 다시 바로잡아 하나님이 약속하신 유업에 이르는 길을 따라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일어난 일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영의 선물은,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온 세상을 향해 흐르는 축복의 길목을 가로막던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하셨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 시간 오늘날 하나님의 축복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은 무엇인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