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28. 10:38ㆍ데살로니가강해/고린도후서강해
앞서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변호하기 위해 자신의 메시지를 설명했었지만(5:11-14) 본문에서는 자신의 사역과 문제들을 언급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 자신이 고난을 받는 가운데서도 그의 사역을 계속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심으로써 그의 사역이 참된 것임을 입증해 주셨다는 것입니다(4:8-10, 고전 4:9-13).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이 마치 어린아이에게 하듯이 말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13절). 자기가 마음을 활짝 연 것처럼 그들도 마음을 활짝 열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에 대해 짜증을 내면서, 그의 사역 방식의 진정성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색다른 사람을 원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후원을 받으며 고린도에 머물고 있는 인물을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릅니다. 또 그들은 바울이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아니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바울을 비난 했던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길고 폭발적인 수사로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습니다. 그 당시 수사학자들이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바울 또한 수사학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선포하던 시절 자신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던 일들을 거창하게 나열하고 있습니다.
6:4-5,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바울은 자신의 매 맞음과 투옥 그리고 고난과 역경의 시기에 대해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관점에서 보면 미덕 목록처럼 다가오지만, 그 당시 사고방식에서는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듣고 싶어 하지 않던 그런 일들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수사학 교과서에 있는 온갖 기교를 끌어모아,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이것이 바로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를, 참 주님을 따르는 사도가 되는 과정이란 것을 깨달아 달라는 것입니다.
6:6-7,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바울이 말하고 있는 목록은 마치 두 음이 화음을 이루지 못하고 부딪히듯이, 서로 상충되는 것들을 하나로 묶는 역설로 가득합니다. 마치 복음의 새로운 창조와 옛 세계가 멧돌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데, 사도는 그 가운데 붙들려 자신이 짖이겨져 가루가 된다고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앞절의 곤경 목록가 본문에서의 성품 목록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대다수는 복음으로 인해 구타와 투옥을 경험하지 않았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처럼 초기의 사도들은 이런 고난과 도전적 상황이 계속 나타난다는 것을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도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인간의 무기가 아닌 하나님의 무기를 사용하여 계속 진리를 말하는 것이라고 바울은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6:8-10,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바울은 신체적 위험과 어려움만이 아니라. 교회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조차 청중 가운데 상당수의 얼굴에서 비웃음과 조소를 느꼈을 것입니다. 자신이 사기꾼으로 몰려 모욕과 비방, 조롱을 받고, 별볼일 없는 사람처럼 취급당하고 또한 교회 밖에서는 죽이려는 암살 시도와 가혹한 ’사법적‘ 처벌을 견디어 낸 원동력을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경험을 하면서 바울은 빌립보서 4:13에서 말한 것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넓게 가져라고 권면합니다(11-13절).
상식을 넘어서는 본문의 균형은 진정한 기독교적 진정성의 표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간혹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은 온통 영광, 기쁨으로 가득하고, 주님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기 때문에 만사형통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만사형통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는 현실의 증거 앞에서도 계속 그렇게 믿으려고 발버둥 치다가는 이중생활을 하게 되고 위선과 천박함이라는 위험에 처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부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하여, 어떤 사람들은 히죽대는 천박한 거짓 기쁨의 영성에 너무 강하게 저항하다가, 세상만사는 침울한 골칫거리로 가득하고 역경과 좌절의 끝없는 순환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다운 성숙은 올바른 균형을 잡는 것입니다. 이것 조금 저것 조금 섞어 놓으면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둘 다 많이, 그리고 동시에 필요한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기독교 공동체를 인도하는 임무에는 슬퍼하면서 동시에 기뻐할 줄 아는 것, 세상의 고통과 기쁨,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눈물과 웃음에 공감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그리스도인다운 성숙인 올바른 균형을 잡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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