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30. 10:54ㆍ데살로니가강해/고린도후서강해
우리들은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은 완벽한 믿음과 신뢰로 세상 풍파를 이겨 내고, 만사에 하나님께 순종하고, 다가오는 시련에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며, 역경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는 성도의 신앙생활을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비추어 보면서 실망하곤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의 삶에서는 기쁨과 경탄, 믿음, 그리고 사랑의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지만 무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이라는 통속적인 이미지는 어디서 온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신약 성경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자신의 서신에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살전 5:16-18). 또한 바울은 빌립보서 4:6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하나님께 다 맡기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려고 한다면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에베소에서 끔찍한 경험을 겪은 뒤 기진맥진한 채 정서적으로 소진한 상태에서 힘든 여행길에 오른 바울과 동행을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성경 말씀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이율배반적인 자신의 신앙생활에서 괴리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바울은 2~4절에서 앞서 말했던 호소(6:11-13)에 이어 또 다시 애정 어린 호소를 하면서 삼중의 부정법으로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고린도 교인들이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은 대적자들로부터 중상모략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대적자들은 바울이 율법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미혹했으며 그들을 파멸로 이끌었다고 주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다고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도리어 고린도 교인들이 잘못 오해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오해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변함없이 그들을 사랑했고 대적자들을 용서한다고 하면서 도리어 대적자들이 교회 안에서 교인들을 선동하여 자신에게 악의적인 비난을 퍼붓었지만 바울은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디도를 통해 그간의 교회의 사정을 전해듣고 자신의 사랑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7”5-6,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우리는 바울이 마게도냐에 오기까지의 여행과정을 이해해야만 바울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베소에서 많은 고난으로 인해 그의 감정은 정서적으로 많이 피폐해진 상태에서 북쪽으로 드로아까지 간 뒤에,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좁고 긴 해협, 오늘날 ’다르다넬스‘라고 불리는 수로를 건넌 다음 마게도냐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는 여행을 하는 동안 희망 가운데 기도했지만 이 여행은 그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두려움과 사방에서 죄어 오는 핍박에 맞서는 끝없는 싸움이었다고 본문에서 바울은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디도가 자신에게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올 것을 기다리면서 얼마나 초조했을까를 본문에서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상태가 끊임없이 걱정했고 치열하게 걱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빌립보서 4장에서 말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은 어떻게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에게 ’염려하지 않는 것‘이란, 매일의 염려거리를 가져다가 자신이 끈질기게 믿는 하나님께 그것들을 떠넘긴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몇 가지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들의 상황이 바울이 겪는 상황보다 훨씬 수월하게 풀리는 때도 있음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바울처럼 일류라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안팎에서 고통과 두려움을 느끼는 이런 시기를 겪었다는 것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또한 바울 같은 고난을 받으면 두려움을 느끼고 마음이 핍박을 느끼고 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들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감사해야 할 것은 디도가 기쁜 소식을 가지고 와서 우리가 그 안도의 한숨을 느낄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함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7:7-8,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그러므로 내가 그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디도가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가져온 뒤 그들에게 성심껏 답장을 적은 바울의 관심은, 이제 자신이 그들을 얼마나 간절히 보고 싶어 하는지, 또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할 때 화를 내거나 나무랄 뜻이 전혀 없음을 그들에게 알리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8절에서의 편지는 소위 ’눈물의 편지‘로 불리우는 중간 편지 인지(지금은 분실 됨), 고린도전서인지 신학자들의 견해는 서로 엇갈립니다. 앞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에게 부아가 나서, 언제든 자신의 권위에 맞설 태세는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바울이 도착할 때 그의 마음 상태가 어떨지 그들이 걱정하면서, 바울이 화를 내지 않을까 염려한다는 사실을 디도가 확인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소식을 듣고 크게 위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에서 과거지사가 된 근심이 그 자체로 훌륭한 일이었다는 확신을 심어 주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7:9-10,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 방식대로의 근심이 있고 세상의 방식대로의 근심이 있는데 그 둘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두 유형은 복음서 이야기의 두 주인공에서 극명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붙잡히신 그 밤에,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까지 예수님을 따라가서. 자기는 도무지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자신의 소행을 깨달은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어린아이처럼 울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시고(눅 24:34, 고전 15:5) 해변에서 예수님과 감동적인 대화를 나누면서(요 21:15-19) 이루어진 회복을 향한 첫걸음이었습니다.. 그의 근심은 그를 회개로 이끌었고 결국 이것은 기쁨으로 이어지는 계기였던 것입니다 반면 대제사장의 하인들을 인도하여 어둠 가운데 있는 예수를 찾아내게 하고 그분을 배신한 유다는 세상의 방식대로 하는 근심의 어두운 심연으로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7:5에서 유다는 자신이 받은 돈을 대제사장 발치에 내팽개치고, 밖으로 나가 스스로 목을 맸습니다. 이것이 두 가지 근심의 상반된 결과인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편지로 야기된 근심이 유다에게서 충격적으로 예시된 어둡고 편협한 마음을 낳지 않고, 베드로에게서 본 근심과 회개를 낳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기뻐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꾸지람에 아픔을 느꼈지만. 그들의 근심은 자신들의 공동체 생활을 제대로 바로잡고 정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통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대한 만연해 있는 만사형통식 통념에서 벗어나, 마게도냐를 통과하다 강렬하고 갑작스러운 전환을 겪었던 바울과 함께 동행해 보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뜻밖의 가슴 아픈 꾸지람을 받아들이려 하면서 회개와 교정으로 나아가는 근심을 겪었던 고린도 교인들과도 나란히 동행해 보는 것입니다.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의 두 입장이 함께할 때 터무니 없는 상상에서 나온 판에 박힌 그림보다 훨씬 더 일상에 가까운 ’’ 그리스도인의 삶이‘이 형성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의 여정에 동행할 때도 꾸지람에 맞닥뜨린 고린도 교인들의 처지에 처할 때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는 근심과 회복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려면 바울이 빌립보서 4:6에서 말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일임을 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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