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고린도후서강해]#21. 8:1-7. "하나님의 은혜"

2024. 6. 3. 10:42데살로니가강해/고린도후서강해

 

앞장에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책망하는 눈물의 편지를 보낸 후 크게 걱정하면서 그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때 디도로부터 좋은 소식을 듣고 위로를 받고 기뻐하는 장면을 기록하였습니다. 본장과 다음 장에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헌금에 대해 설명하고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서 마게도냐 교회들이 헌신적이고 자발적으로 헌금에 동참한 것을 모본으로 제시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더 많이 헌금을 하라고 사람들을 독촉하는 이야기가 전부는 아닙니다. 사실 헌금 독촉은 이 이야기의 주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이 이야기는 교회와 회중의 삶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에 관 것입니다. 바울의 최우선 목표는 자기가 고린도에 도착할 때까지 고린도 교회가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기부할 헌금 전액을 적립해야 하는 점을 분명히 해 두는 것입니다. 그는 이전 서신에서 이에 대해 간략하게 적었고(고전 16:1-4), 중간에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에서 야기된 문제에서도 굴하지 않고 이제 그 일을 밀고 나가 완수하기로 결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단지 고린도 교인들과 흡족하게 그리고 기분 좋게 화해하는 데서 그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의 중요한 프로젝트에 그들이 동참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곧 그들이 예루살렘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 동등한 가족의 일부임을 이방인 교회들에게 입증해 주고,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메시아 예수를 믿게 된 할례 받지 않은 낯선 이방인들이 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 곧 부활하신 주 예수를 믿는 믿음에 의해 규정되는 가족 안에서 동등함을 입증해 주는 프로젝트인 것입니다.

 8장과 9장에서 바울은 단 한 번도 자체를 의미하는 어떤 헬라어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도직에 대해 사례를 지급하겠다는 고린도 교회의 요청을 거절해 왔던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재정적 관계에는 언제나 불편한 것이 있었습니다(고전 9:1-18, 고후 11:7-11). 그들은 바울이 자신해서 돈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황했고, 기분이 상하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바울이 돈을 요청하고, 그것도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면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그들은 온갖 이상한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당부 전체를 돈이 아니라 ’은혜의 차원에서 풀어가고자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인 것입니다.

 8: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본문에서 말하는 마게도냐 교회는 오늘날 발칸 반도에 위치해 있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를 가리킵니다(17:10-15). 이 교회들은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 때 세운 곳입니다. “은혜는 바울의 ’핵심‘ 단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은혜‘에 대해 말할 때. 십중팔구 일차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믿음으로 이끌기 위해,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성장하게 하기 위해 부어 주시는 과분한 사랑과 능력을 가리킬 것입니다. 그런 의미도 중요한 핵심이긴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본문에서 다른 방식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곧 은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인 안(in)에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하시려는 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들에게 이 ’은혜‘를 주셨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 말은 단지 그들이 이른바 엄청난 영적 경험을 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감동으로 인해, 그들이 거의 무모할 정도로 후한 헌금을 했다는 뜻입니다.

 8:2-5,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본문에서 바울은 마게도냐 성도들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당시 마게도냐 교인들은 로마의 정복자들에게 많은 천연자원과 농산물, 재산등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혹독한 박해를 당했고 교회에서는 유대인들의 난동으로 큰 시련을 겪고 있었다고 합니다(1:29-30, 살전 1:6). 즉 그들은 몹시 가난했고, 심각한 핍박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동시적인 문제였을 것입니다. 핍박은 직업과 수입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주 예수님, 바울 자신, 그리고 복음 사역과 교회 일치를 위한 깊은 헌신으로 인해, 그들은 능력껏 헌금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헌금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은혜의 사역일 수밖에 없다고 바울은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8:6-7,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여러분도 이 은혜를 바라야 하지 않느냐고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편지와 이전 편지에서 보았듯이,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다채로운 영적 업적,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서 과거에 행하셨고 현재 행하고 계신 놀라운 일들에 자부심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이 은혜도 풍성하게 나누지 않느냐고 바울은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이 이룬 영적 성취를 완성하라, 디도가 앞서 시작한 이 은혜의 사역을 완수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담한 호소입니다. 사역자들이 교인들에게 헌금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 사역을 위해 기금을 모으는 일 또한 사역자의 임무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인간적 동정심을 부추기는 것이나 성도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돈을 자신들이 가졌다는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나 또 자신들이 후하게 헌금했다는 사실을 알려서 사회적 위신을 세우라고 독려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과 삶에서 일어나는 은혜의 사역인 것입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이런 극적 광경을 목격했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이런 광경을 보고 싶다고 강조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요점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 풍성하게 넘치면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하나님의 은혜를 내 삶에서 잘 적용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