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고린도후서강해]#23. 8:16-24. "복음의 일꾼들"

2024. 6. 5. 10:26데살로니가강해/고린도후서강해

 

오늘 본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예루살렘 교인들을 돕는 헌금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 후 헌금 모금을 위해 디도와 다른 두 사람을 파송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디도가 이 편지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져가서 자신의 도착을 준비하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그는 다시 디도를 고린도로 보낸 것입니다. 디도와 함께 간 두 사람의 이름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아마도 그들은 마케도니아 교회 출신일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지금 준비 중인 방문을 끝낸 후 고린도를 떠나는 여정을 이야기하면서 일곱 명의 동료를 열거하지만(20:4), 디도는 거기 포함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을 적으면서 고린도 교인들이 일말의 의혹도 품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이들 세 사람, 즉 디도와 다른 두 형제들은 참되고 진실한 복음 사역자이고, 그들은 완전히 신뢰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고린도 교인들의 헌금을 독려하여 일부를 자기 몫으로 챙기지 않는다는 것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8:16-17,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디도는 고린도 교회에서 화해하는 일을 훌륭히 수행한 후 기쁜 소식을 가지고 마게도냐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에게 다시 고린도로 돌아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바울은 그 만남 직후 이 편지를 썼고, 자기가 직접 갔을 때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도록 디도가 서둘러 그 편지를 갖고 자기보다 앞서 고린도로 가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디도는 바울의 바램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열성적이고 도전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고린도 교회로 돌아가기를 갈망했다고 바울은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8:18-19, ”또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본문에 나오는 사람은 누가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가 바울의 선교 여행 이후 최소한 10년 혹은 20년 뒤에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대 신학자들은 누가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사용한 단어를 보아서는 설교자나 교사로 잘 알려졌던 사람, 혹은 효과적이고 품위 있게 모금하는 데 필요했을 사무 행정 같은 실제적으로 노련한 기술을 갖춘 어떤 사람을 가리킬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8:20-21,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 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본문이 오늘 전체 본문의 핵심 주제입니다. 바울은 단지 자신의 평판을 염려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많은 복음전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만약 그가 그 일을 하는 이유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것은 그의 사명과 사역에 치명적 파국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가 염려하는 것은 세상이 작고 어린 기독교 운동을 보면서, 그것을 통속적으로, 즉 생활비를 버는 수단으로 괴상한 교리를 가르치면서 곳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말 근원적이고 도전적인 새로운 현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8:22-23, ”또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는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 이제 그가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더욱 간절하니라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본문에서 언급되는 또 다른 형제는 첫 번째 무명의 형제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끈질긴 열망이 그에게 있음을 보여 주는 훌륭한 증거를 찾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이들을 소개하면서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라고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마지막에 나타나실 때 그분의 제자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실 것이라는 사상은 바울이 다른 곳에서도 알려진 내용입니다(살수 1:10). 다른 그리스도인을 보면서 이 사람은 메시아께서 다시 나타나실 때 그분의 영광의 일부가 될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동료 신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으로서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온 세상을 밝힐 영광의 일부로 존중하는 것입니다.

 8:24,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이라바울은 헌금을 단순히 금전 문제가 아닌 신앙 문제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 헌금이라는 실천적 행위를 통해 고린도 교인들이 새 형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 대해 자랑하려는 의도도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상황은 다른 교회들에게도 알려졌고 염려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불신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본문에 녹아들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주제는 자기 성취가 아니라 자기희생입니다.. 만약 그것이 되지 않으면 자신의 평판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복음 토대 자체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을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복음을 자기희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