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2. 12:12ㆍ데살로니가강해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내고 나서 얼마 후 데살로니가 교회로부터 교회의 상황을 자세히 적은 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편지에 의하면 교인들은 주의 날이 이미 와버렸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바울에 의해 쓰인 것이라고 잘못 알려진 편지 때문에 큰 혼란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살후 2:1-2). 그들 중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곧 오신다고 말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들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교회 안에서 거짓 교리를 퍼뜨리는 자들을 경계함과 동시에 재림에 관한 그의 가르침을 오해한 자들에게 올바르고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본서를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시기 위해서는 일정한 순서를 거쳐야 하며 또한 재림이 급히 있는 것이 아니므로 광신적인 생활에 빠지지 말고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을 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1-2절은 통상 바울의 서신서의 첫머리에 나오는 문안인사입니다.
1:3-4,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바울은 신생 교회에 두 번째 편지를 쓸 때, 데살로니가 교인들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옳고 당연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 세워진 교회의 믿음과 사랑과 고난, 이 모든 것을 돌아볼 때, 바울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방 도시에서 복음의 메시지를 전했을 때, 그는 복음을 그저 청중의 이성에 호소하는 일련의 사상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또한 단지 사람들이 즐길 정서적 체험을 제공한다고 보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기이한 수단 혹은 그릇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과 몸과 삶 전체를 온전히 사로잡기 위해 복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이 복음에 믿음으로 반응하여 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께 절대적인 충성을 바칠 때, 그들이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자신들의 삶을 서로 나눌 때, 그들이 새로운 신분을 위해 기꺼이 고난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바울은 이를 하나님 자신이 주신 선물이요 새로운 탄생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올바른 반응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든 것을 행하신 하나님께 진심 어린 감사를 돌리는 것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에는 감사가 뒤따르고, 감사는 더 많은 은혜를 받을 마음을 마련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베푸셔서 새로운 신자들 안에 믿음과 사랑과 인내를 열매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은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짝을 이룬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5-7상,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을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마지막에 하나님이 심판을 행하시어 하나님과 복음에 충실했던 이들, 그리하여 권력과 신들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핍박받은 이들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공정하신 하나님은 우상에 대한 충성과 비인간적인 삶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들에게 그대로 되갚아 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이 이르면 오류가 바로잡히고 악이 응분의 보답을 받을 것이라는 이 임박한 심판 사상은 바울 시대의 유대인들 사이에 보편적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유대 사상에서 악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내리는 대리인은 메시아 자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은 바울은 결국 이렇게 과거에 오류를 바로잡는 일을 성취하실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행 17:31, 롬 2:16). 바울은 전서(살전 2:1403:5)에서 그들이 고난을 견디면서 보여 주는 인내는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의 표지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정말로 모든 인간의 나라를 대신하게 될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라면 세상이 그들을 위협과 도전으로 여겨 온갖 수단을 동원해 반대할 것은 뻔한 결론인 것입니다. 지금처럼 그 당시에도 많은 ‘종교’와 많은 숭배 집단, 많은 ‘신’이 있었다고 합니다(고전 8:1-6). 만약 바울이 이 목록에 또 하나를 더하는 데 불과했다면, 어느 누구도 크게 마음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른 데로 향하던 모든 충성심을 버리고 돌아와 예수님께,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알려진 하나님께 전적으로 충성하도록 청중을 초청했던 것입니다. 이에 그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것이 실로 메시지가 효과적이란 표지였던 것입니다. 즉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그 표지인 것입니다. 고난과 핍박 앞에서 감사하는 것이 모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감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덕목인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자랑스러워한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 편지를 쓰던 즈음에 그는 베뢰아로 갔다가 아테네로 갔고, 아마 지금은 고린도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입니다. 바울은 각 지역을 가면서 끊임없이 복음의 메시지를 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각 지역에서 메시지를 전했을 때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 말했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자신을 진정한 메시아 예수의 사도임을 보여 주는 핵심 증거라고 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었을까? 이 시간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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