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8. 12:03ㆍ목회서신강해
오늘 본문은 부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지닐 것과 마지막 권고의 인사를 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에베소에는 상당히 부한 신자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부자들에 대한 경고는 반드시 필요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부에 대해 말하는 요점은 ‘부의 불확실성’입니다. 7절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듯, 우리들이 떠날 때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여기 있는 동안 그것을 잘 지키지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돈은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변함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돈은 의지할 수 없습니다. 돈이 아주 많은 사람들조차도 돈으로 만족을 살 수 없음을 깨닫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들에게 즉시 돈을 다 나누어 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0:17-22에서 부자청년에게 자기를 따르려면 돈을 다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자청년에게는 부가 그를 노예로 삼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부르심을 따르지 못하도록 하는 우상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은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많은 돈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그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지혜로운 지침을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6:17-19,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바울은 우선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즉 거드름을 피우기 위해 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필요한 것 이상의 돈이 있는 이들은 그 돈으로 선을 행할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이 학교와 병원 혹은 교회까지도 지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부자들이 예술의 후원자가 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림이든 교향곡이든 그 무엇이든 아름다운 많은 작품들이 존재했던 것은, 부유한 후원자가 가난하지만 재능 있는 예술가나 작곡가를 뒷받침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돈이 있는 이들은 새로운 일들이 생겨나게 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게 되고 “너그러운 자”가 되고 나누는 일에 열심을 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19절이 말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기 위해 돈을 쓰고 있다고 암시하는 것일까? 답은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순례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가 이르게 될 생명임을 분명히 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즉 믿음에 이르게 된 순간부터 그 목표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신칭의’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이미 들어간 새 세상에 합당하게 살아가라는 명령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목표, 곧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에서 부활하여 영광스러운 생명에 이를 때,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가운데, 성령 안에서 그 생명이 그 새 세상에 합당하게 우리를 준비시키고 빚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상황이든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난하다면, 우리는 우리의 가난에 적합한 순종을 요구받을 것입니다. 반면 우리가 부유하다면, 우리의 부유한 상황에 적합한 순종을 요구받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그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어느쪽이든, 요점은 어떤 한 범주에 불공평한 이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훈련 중인 조각가처럼 각자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대리석 덩어리로 자신의 작품을 조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오는 시대의 그림자일 뿐인 현시대의 생명과 대조되는 그야말로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라고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갑자기 주제를 바꾸어 경고의 권면의 말로 마지막 인사로 대신합니다.
6:20-21,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바울이 본문에서 말하는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은 3세기까지 주요 세력으로 성장한 ‘영지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타락한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저급한 신으로 취급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그들의 교리의 초기 교사로 넣으려고까지 하면서 기독교의 용어를 빌렸다고 합니다. 그 운동은 특별한 ‘지식’을 믿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비밀스런, 숨겨진 지식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즉 당신은 몇 안 되는 특별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며, 몸에 감금되어 있지만 거기서 자유로워지라고 부름 받은 빛의 불꽃이라는 것입니다. 그 운동의 특징은, 특히 그 불꽃이 실제로 무엇인지와, 여러 층의 하늘에 거주하는 다양한 영적 존재들에 대해 끊임없는 추측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길을 따르는 것은 옳지 못한 길에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그 길을 벗어나 하나님을 선한 세상의 선한 창조주로 믿고 예수님을 새로운 창조 세계의 시작으로 믿는 참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불러 ‘그런 것들을 버리고 우리의 생명을 찾으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찾는 그 생명은 새로이 재창조된 하나님의 세상에서의 부활 생명일 것입니다.
바울은 마무리 인사에서 디모데와,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그 은혜가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은혜는 구체적이고, 특정한 문제와 도전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그 은혜는 실제적인 차원으로 내려와서 손을 더럽히고 일에 뛰어드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이 우리가 진정한 ‘목회’서신에서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현실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묻어나는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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