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로마서강해]#34. 8:5-11. "육신을 따르는 자들은 사망"

2023. 11. 9. 12:06로마서강해

 

유대유대인의 사고방식에서는 창조 세계 위에 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은 창조 세계 속에도 신비롭게 존재하신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 전통에는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영, (특별히 성전에 내주 하시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물론 하나님의 법 등이 있다고 합니다. 사무엘하 7장과 시편 2편 등에서 오실 왕에 대해 극구 높여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아들도 이 목록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도 그런 표현 방식을 사용하여 이스라엘과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구출 작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셔서 율법을 완수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거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영은 지금 자기 백성의 마음속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아직 바울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정규 공식을 발전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가서 삼위일체 신학으로 밝혀질 모든 요소를 이미 담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8:5-8,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본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사이의 대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율법의 요구가 비그리스도인에게는 이루어질 수 없고 그리스도인에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줄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육신을 따르는 자들을 비그리스도인을 일반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아담을 따라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육신을 좇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신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한마디로 세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일들은’ 하나님이 없는 삶의 모든 국면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제외된 삶 속의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 말은 영적인 모든 것에서 완전히 단절된 것을 의미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관심을 집중시키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아무 상관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잠시 있는 시간 세계 속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원에는 아무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윤리도덕적으로 훌륭하고 인격이 고매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없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 없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 없이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하지 않고 하는 모든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제와 봉사, 사역 또한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각자의 ‘육신의 일을 생가한다’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들 자기의 ‘의’를 위하여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또한 율법을 잘 지키고 거룩함을 추구하는 바리새인들을 ‘육신의 일만을 생각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는 말은 자연인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그 점이 바울이 불신자에 대해서 어디서나 말하는 요점이요,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에 대해서 항상 하는 말입니다. 영적인 사망은 하나님의 생명 밖에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영생을 얻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생명 밖에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점이 그가 죽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이 말은 육신의 생각은 육신이 상상하는 하나의 신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싫어합니다. 태생적으로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소원을 빌 수 있는 신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들의 생사화복에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 53:6)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비그리스도인 곧 자연인은 하나님을 미워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복종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8:9-11,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바울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로마의 교인들에게 그들의 최종적이고 완벽한 구원에 대한 확신을 주려는데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그들을 해방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육신에 있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더 이상 타락한 인간 본성에 의해서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육신’이라는 의미는 타락과 죄의 결과로 그에게 어떤 성령의 감화가 전혀 없는 사람과 그의 본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울은 7:5에서 이미 그 점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영에 있다’는 말씀은 우리의 조건이나 지위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육신에 있다’는 것의 정반대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육신에 있다’고 할 때 그것이 죄에 빠진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무리 죄를 짓는다 할지라도 그가 다시 ‘육신으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에 있다’는 것 또한 하나의 지위요, 조건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영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전에는 ‘육신’의 영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영’의 영역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10절에서 바울은 지금 우리들에게 해당되는 진리 곧 우리의 현재 위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라고 말하는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장래, 우리의 궁극적인 지위는 11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바로 이것이 우리의 장래요, 궁극적인 결말인 것이라고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몸’이란 우리의 육체적인 몸입니다. 타락한 인간 본성의 ‘육신’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몸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몸은 죽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일어날 어떤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현재 우리에게 해당되는 어떤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망의 씨앗이 우리 몸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의 몸에는 사망과 부패의 본질이 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사람의 몸은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할 때는 생명으로 충만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락하고 나서부터 우리는 질병과 연약과 부패와 죽음의 씨앗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죽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말하는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이니라’에서 ‘영’은 ‘성령’이 아닙니다. 몸과 대조되는 ‘영’입니다. 즉 사람의 ‘마음의 영’입니다. “영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은 ‘생명의 씨앗’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즉 ‘그의 영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은 여기 이 땅에서 새로운 생명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거듭난 사람이며 위에서 난 사람이며 ‘자기 속에 하나님의 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씨가 그가 중생할 때에 그 사람 속에 주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몸은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영이 살아있기 때문에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몸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죄가 몸에 남아있어서 부패와 죽음의 원리로 작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8:22-23에서 말하는 것처럼 몸은 아직 구속받지 못했지만 구속받게 될 것입니다. 잠깐 동안 몸이 ‘죄로 인하여 죽어있다’ 그러나 몸이 구속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늘 깨어서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들의 영은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들의 몸속에는 죄가 기회를 노리며 대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사망의 영역으로 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죄는 그리스도인에게 큰 문제를 일으킬 수는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영적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구원을 받았음을 아는 사람이요, 죄가 아직도 자기 몸속에 애쓰고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죄가 끝내 자기를 패배시키지 못할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몸속에 있는 죄와 끊임없이 투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낙담하며 싸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영이 의를 위하여 살아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 한 번 생각해봅시다. 나는 과연 영적전쟁을 치를 때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이런 원리를 알고 영적전쟁을 하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