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로마서강해]#43. 9:30-33. "걸림돌"

2023. 11. 23. 11:39로마서강해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사야서의 두 부분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둘 다 하나님이 바닥에 세우실 ‘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28:16에서 그 돌은 아직 세워지지 않은 새 성전의 기초입니다. 이사야는 실제로 오실 왕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그분은 성전을 중심으로 한 커다란 공동체의 인간 주춧돌이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8:14에서 이사야는 반항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이 그들 앞에 거치거나 걸려 넘어질 돌을 세우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내릴 심판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28장에서 예언자는 누구든 그분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거라는 약속으로 끝맺습니다.

 바울은 이 두 부분을 영리하게 결합하여, 이제 하나님의 새로운 ‘건축물’의 기초가 놓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편에서 계획을 바꾸셨다기보다는 다시 한번 성경 말씀을 성취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믿지 않는, 곧 기초이신 메시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돌’에 걸려 넘어져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이러한 불신에 대해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거나 하나님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줄곧 계획하신 것을 예기치 않게 성취했음을 어떻게 나타내는지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9: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바울은 이방인의 특징은 ‘의를 따르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바르게 되기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의 생활이 악한 생활이었다는 사실보다는 더 끔찍한 것은 그들 이방인들이 ‘하나님이 없는’ 생활을 하였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예베소 사람들에게 그 점을 “세상에는 하나님도 없고”라는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며 심판하신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화해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그런 그들이 ‘의를 얻었다’고 바울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의의 법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것은, 바울이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말하는 요점입니다. 바로 그것이 바울의 심정을 아프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이 바울에게 “큰 근심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특징은 이 ‘의’의 문제에 대해서 대단히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열심히 그 ‘의’를 좇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율법의 차원에서 의를 추구하고 있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율법을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게 만들지 않는다. 율법에 복종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비극이 그들은 의에 관해서 이처럼 대단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자신들이 그 의에 도달했다고 스스로 설득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31-32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하나님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논증하고 있고 반면에 어떤 의미에서 삶 속에서 가장 큰 비중을 종교에 두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금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이 예언되고 예견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것을 보게 하셨고, 그것을 실제로 기록에 옮겨 놓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비극의 진수는 여기에 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자랑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랑했습니다. 또한 선지자들과 선지자들의 글을 자랑을 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정죄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선지자들의 글이었다는 것을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기록한 것을 보면 그들이 이 '눈먼 ‘ 것으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눈먼 것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의 메시아에게 걸려 넘어졌고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서 메시아 안에서 영광스럽게 제공하신 구원을 받지 못하고 걸려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주님과 우리와 관계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태도로써만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시험하는 돌’이시며 ‘시금석’이시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돌들에 걸려 넘어졌기 때문에 교회 밖에 맴돌고 있다고 바울은 논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인격 자체가 걸림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방식 자체가 그들에게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고대하였지만 메시아가 구유에서 태어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가난하고 비참한 조건에서 태어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실 메시아는 찬란함과 영광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메시아는 하나님의 위대한 왕, 하나의 위대한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인물이며 엄청난 권세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예수님에게 일어났던 일들은 정반대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에 걸려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은 전혀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바리새인들과 모든 종교지도자들에게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또 그것에 걸려 넘어졌던 것입니다. 헬라인 입장에서도 예수님은 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학파나 어떤 학교에 속한 적이 없었습니다.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걸려 넘어지게 된 여러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구세주라고 외치는 자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오다니 이 모든 것들이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그들에게 하신 말씀 때문에 넘어졌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자로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자신을 세우지 않았고 어떤 군대도 끌어 모으지도 않았으며 로마의 정복자들을 향해서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고,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모든 열국 중에서 뛰어난 자리로 높이시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다는 것도 그들에게는 걸림돌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다 준수했다면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에게는 무엇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