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21. 11:29ㆍ로마서강해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말할 때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뜻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훨씬 더 중요하게 말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통해 실행하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그 답은 바로 이스라엘이 세상의 빛, 곧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과 새 창조의 말씀을 모든 민족에게 전할 백성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토기장에게 대들면서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진흙 덩어리와 같았다고 바울은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흙이 가마로 들어가 단단해지는 단계에 아직 도달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후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현재 모습 그대로 두거나 아예 부숴 버리는 것뿐입니다. 이스라엘과 세상에 다행스러운 일이 있다면, 이스라엘이 반항했을 때만 해도 아직은 모양을 빚는 단계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 단계에서 그릇이 망치질 경우라면, 그릇을 새로운 모양으로 다시 빚을 권리가 토기장에게 있음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6절에서 시작했던 이야기의 연속으로,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이야기입니다.
9: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바울은 야곱과 에서에게 아무런 원인이나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신 것은 의로우신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 두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이 불의하신 것이 아닌가? 이런 인간적인 의문에 대해 “결코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선택과 긍휼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9:15-16,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 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본문은 출애굽기 33장의 상황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출애굽 계획을 밀고 나갈 것이라고 모세에게 선언하셨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반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획은 지속적으로 이루어 나갈 것이라고 바울은 구약 성경의 예를 들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의지라는 것입니다.
9:17-18,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이스라엘을 종살이에서 이끌어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저항했던 이집트 왕 바로에게 행하셨던 일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항하고 교만한 사람들 속에서조차 훨씬 더 영광스러운 구원 사역을 이루기 위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는 자신도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압박과 반항을 이용하여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그 이름을 온 땅에 널리 알리시려고 하셨으며, 이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이 마침내 애굽을 탈출함으로써 실현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바로에게 행한 것처럼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을 드러내고 심판과 긍휼이라는 놀라운 행위를 보여주심으로 온 세계에 그분의 명성을 나타내신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9:19-20,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앞의 절에서 예상되는 반론, 즉,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이 완고해지는 것을 결정하신다면 사람의 마음이 강팍해지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책망하실 수 있겠는가?”에 대하여 바울은 인간은 단지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창조주인 하나님께 질문하거나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라고 따질 권한이 없다고 바울은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9:21-24,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토기장이와 진흙 이야기는 이사야 29:16과 45:9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 구절들은 하나님이 반항하는 이스라엘의 문제로 고심하시던 이스라엘 역사의 한 시기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토기장이가 말을 잘 듣지 않는 진흙을 갖고 씨름하는 것과 같습니다. 토기장이와 진흙의 이미지를 사용한 의도는, 일상적 표현으로 하나님을 유일하게 살아 있고 생각하는 분으로 묘사하는 데 반하여 사람은 생명 없는 진흙 덩어리로 묘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택하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에, 그리고 부드럽게 빚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이스라엘이 진흙 덩어리처럼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구약의 역사서와 예언서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재형성하시기 위해 유배를 보내시는, 다시 말해서 토기장이가 진흙을 다시 빚으시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제 하나님이 특히 이방인을 불러 완전하고도 동등한 구성원으로 참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생각은 그 당시 유대세계에서는 과격하고도 예기치 못한 새로운 관점입니다. 아무튼 지금 바울은 유대인만으로 구성된 집단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집단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불빛이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 전체가 다 타락하였습니다. 그 멸망의 덩어리 속에서 한 사람, 곧 아브라함이라 일컫는 사람을 취하여 불러내시고 거대한 민족을 이루시고 아브라함이라 부르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그에게서 난 모든 자마다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다든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어느 누구든지 택하실 동등한 권한을 갖고 계시며, 어떤 때는 유대인을 어떤 때는 이방인을 선택하실 권한을 갖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부모들이 그리스도인들이라든지, 유대인이나 어떤 다른 민족에 속했다는 이유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를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듣고 있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가 태초 전부터 자기들을 선택하여 지금 그 자리에 있게 했다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기뻐했을까~막연히 예수님에 대하여 알고 있다가 바울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감격을 했을까~
이 시간에 한 번 생각해봅시다. 나도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에 감사한 적이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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