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로마서강해]#47. 10:14-21.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2023. 11. 29. 11:54로마서강해

 

바울바울이 직면한 문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과 그분의 계획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했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고 하나님의 원래 계획을 설명하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믿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예견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경에서 다양한 부분을 검토하고, 하나님이 장차 무슨 일을 하실지 이스라엘에게 늘 말씀하셨음을 보여 줌으로써,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심을 받았는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은 구원(신명기 30장에 나타난 대로 이스라엘의 구원)의 좋은 소식과 함께 앞 본문이 멈춘 곳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구원은 이제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개방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그것을 염두에 두셨고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이스라엘에게 실제로 경고하셨음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10:14-15,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듣으리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오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자신과 동료 사도들이 예수님의 좋은 소식을 들고 이방인들에게 나아감으로써 이스라엘의 전통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전통을 성취했음을 보여 주려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사야 52:7을 인용합니다. 구원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심의 결과입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면 주님에 대한 지식이 먼저 주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내리는 결론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전도자들은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도록 하기 위해서 이 주님에 관해서 알려 주도록 보내심을 받았으며, 바로 그것이 구원의 전체 과정이 진행되는 방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구약 이사야서에 기록이 되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0:16-17,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바울은 하나의 문제에 봉착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방 세계에서조차 이 메시지를 듣고도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 역시 이사야서 53:1을 인용합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구원은 우리들의 의지력의 행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결심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구원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복음을 전혀 듣지 않았던 이방의 땅에 거하는 이방인도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다들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을 바울은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그의 안타까운 심정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경을 인용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항상 이러한 불신앙의 죄를 저질러 왔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도 시대에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바울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언은 항상 두 가지 의미에서 취급되어야 합니다. 당시의 백성들에게 즉각적으로 적용되는 의미와 앞으로 일어날 어떤 상황에 적용하는 두 가지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사야를 통해서 전파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메시아 시대에도 여전히 해당이 된다는 것을 바울은 알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똑바로 알면 현시대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믿지 않음을 통해서 이사야의 예언이 진리임이 입증한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모든 것이 구약 성경에 이미 예고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시대에는 구약성경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을 보는 영적인 눈을 가지고 있다면 구약 속에서 복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자기 시대에 일어났던 일이 다름이 아니라 이미 구약성경에서 예언 된 것의 성취임을 끊임없이 보여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들었다고 해서 모두 다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믿든지 믿지 않든지 간에 우리들은 다만 복음을 선포할 따름인 것입니다.

 10:18-21,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으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바울의 궁극적인 목적은 유대인들을 고소하거나 그들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를 보여 주는 데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 바울의 궁극적인 목적은 10:1에서 한 말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입니다. 그가 진심으로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를 그들에게 보여 주고, 아울러 그들이 그것을 알게 되면 회개하고 그것을 인정하여 주 예수님께 돌아오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시편 19:1-4를 인용하면서 복음이 어느 곳에서나 전파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믿지 않는 것은 들은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자기들은 복음을 들은 기억이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변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비밀스러운 어떤 메시지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복음은 그 고대사회에서 유명한 소위 신비주의적인 종교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신비로운 종교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이집 저 집을 다니면서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비밀은 어떤 특정 소수에게 전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은 정확히 그 반대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숨겨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부르심을 받고 세우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은 전도자들을 통해서 모든 지역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들려지도록 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전통과 복음 자체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느닷없이 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유대인들은 원래 우상 숭배자였던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따른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결국 그들의 메시아라는 사실을 더욱 믿지 않았다는 것을 바울은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 자신도 다메섹 도상에서의 경험이 있기 전에 그러했으니까. 바울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구약성경의 예언서를 통해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처럼 바울이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방향이 틀어졌을 뿐입니다. 유대인에서 모든 예수님을 주로 믿는 자들에게로~ 그럼 현재 우리들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것이 오래전부터 계획된 결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현재의 우리들은 복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들 구원받은 표시로 행위에 집착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내면은 곪아 터져도 겉만 경건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꼭 복음서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이 많은 요즘의 교회인 것 같습니다. 이 시간에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나는 과연 구원의 표지를 무엇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