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로마서강해]#48. 11:1-6. "하나님이 남겨두신 자들"

2023. 11. 30. 11:58로마서강해

 

로마서 9, 10, 11장은 한 다락으로 이해하고 해석을 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장들의 주제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부했고 교회 밖에 있었으며 이방인들이 대신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로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가 이 일에 관심이 있는 이유는 그 자신도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관심사는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훨씬 더 깊은 관심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대한 큰 의문이었습니다. 9, 10, 11장의 목적은 이러한 문제에 답하고, 절대로 하나님의 목적이 좌절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하고 명확하게 나타내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언제나 이루어졌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항상 절대적으로 완벽하게 최후의 완성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9장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목적을 자신들의 생각으로 바꾸고,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으로 구원받는 대신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구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 끝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스라엘 내에 있는 또 다른 이스라엘의 구별이며, 하나님의 목적이 이렇게 구별된 영적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입니다.

 10장에서는 바울이 하나님의 구원이 항상 믿음으로 말미암았고 다른 길은 절대로 없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나 인간적인 다른 무엇에 따라 좌우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10:13에 요약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에 있어서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며, 선한 일을 하고 종교적이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모두에게 전해져야 하는데, 문제가 되는 한 가지 사항은 복음을 믿는가 안 믿는가, 복음에 순종하는가 순종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이방인에게 전해지기 전에 먼저 유대인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완전히 오해했기 때문에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구원이 언제나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대신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11장에서는 새로운 주제가 시작됩니다. 현재의 상황은 설명되었고 이제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소외되었다면 항상 소외된 채로 있을 것인가? 구원과 관련된 유대인의 끝이 이것인가?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종결되었는가? 사도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을 합니다. 이것이 11장의 배경이고 앞의 세 장의 요약입니다.

 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도 이스라엘의 정통 계보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함으로, 베냐민 지파가 유다와 함께 다윗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했던 반면에, 솔로몬이 죽은 다음에 나머지 열 지파는 사마리아에 자신들의 왕국을 세웠다가 앗수르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만일 누군가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완전히 관계를 끊으셨다는 말은 단 한 명의 이스라엘인도 복음을 믿을 수 없고, 복음에 의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면 이에 대해 그의 논점을 증명하려는 것입니다. 즉, 사도는 “나도 이스라엘인인데, 복음을 믿고 복음에 의해 구원을 받았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1:2-4,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끊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2절 말씀은 시편 94:14의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인용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2절 이하에 나오는 엘리야에 관한 언급은 무엇을 의미할까? 왜 바울은 이 언급을 포함시켰을까? 그 대답은 이것일 것입니다.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복음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관계를 끊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불쌍한 엘리야와 같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자신만이 홀로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에게 주신 하나님의 대답은 의로운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주장하는 요점입니다. 즉 사실상 그는 “나 혼자만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많은 다른 사람들도 믿느니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1:5-6,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홀로 850명의 거짓 선지자와 맞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격퇴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있은 후 엘리야는 여왕 이서벨이 자기를 죽이려는 의도를 듣고 살기 위해 도망쳤습니다. 그다음에 우리는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께 탄원을 드리고 있는 엘리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요컨대 그의 기도는 이런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의 제단을 헐어 버렸습니다. 이제 저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나까지 죽이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 백성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십니까? 왜 그들을 벌하지 않으십니까?”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의를 행하시기를 청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무엇일까? 바울은 엘리야가 상황을 잘못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목적은 자신만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고 자신만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면서 엘리야 시대와 자신의 시대 사이의 유사성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언급된 숫자와 엘리야의 생각 사이의 큰 차이를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와 칠천의 차이입니다. 불쌍한 엘리야는 “나만 남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 명이 나에게 있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차이인가! 이 사실은 5절에 나타난 바울의 결론에 힘을 줍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엘리야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남겨 놓으신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민족 대부분이 배교자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들”를 남겨 두셨습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직도 남은 자들을 남겨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1세기의 상황을 표면적으로만 보면 기독교회가 이방인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결론이다. 나도 그 안에 있다”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남은 자들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오래전에, 우리 주님께서 오시기 훨씬 전에 사라졌을 것입니다. 교회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면 오래전에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교회가 계속되는 이유는 한 가지뿐입니다. 곧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교회가 인간들의 교회였다면 사람들이 오래전에 교회를 타락시켰을 것입니다.

남은 자는 하나님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소수의 사람이 이 진리를 사수하기로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진리를 고수하려는 결정을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만일 1세기에 하나님의 선택이 없었다면 아마도 교회는 오래 전에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이 계속 전해지도록 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효력도 나타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의 원리를 통해 계속 전달되게 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선택은 전적으로 은혜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곰곰이 생각해봅시다. 나는 진정 하나님께서 남겨 둔 자인가를~